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임오군란 발생, 독립운동가 여운형·이승만 사망
상태바
임오군란 발생, 독립운동가 여운형·이승만 사망
  • 세종포스트
  • 승인 2016.07.19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 속 오늘 | 7월 19일

○…1870년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발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또는 보불전쟁(普佛戰爭)은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킨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인 프랑스를 제거해 독일 통일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목적으로 일으킨 프랑스와 프로이센간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1871년 1월, 파리 시 교외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방에서 독일 제국의 성립을 선포하고, 프로이센 국왕이었던 빌헬름 1세가 초대 독일제국 황제로 추대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밖에 독일은 프랑스 알자스 및 로렌 지방을 획득했으며 많은 전쟁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쟁 후 독일-프랑스 관계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까지 적대적인 사이가 됐다.


○…1882년 - 임오군란 발생


임오군란(壬午軍亂)은 1882년 훈련도감에서 해고된 구식 군인들의 10개월 이상 연체된 봉급에 대해 정부가 불량 쌀을 지급해 일어난 난이다.


10년 전 실각했던 흥선대원군과 척화파들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중전과 외척 민씨 제거 및 비리 척결, 일본과 서양 세력에 대한 배척 운동 등으로 확대시켰다. 또 전임 선혜청 당상 김보현, 당시 선혜청 당상 겸 병조판서 민겸호, 선혜청 창고지기인 민겸호 수하의 착복 비리와 부정 축재 사실까지 드러나며 관련자들이 살해됐다.


성공하는 듯했던 난은 중전 민씨를 놓친 데다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청나라군이 개입하며 진압됐다.



흥선대원군은 톈진으로 끌려가고 척화파들은 제거됐으며, 청나라와 결탁한 중전 민씨가 충주에서 환궁하면서 민씨 외척들이 조정을 완전 장악했다.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들도 조정의 중책을 맡게 됐으며, 난의 진압을 축하하기 위해 과거 시험이 열리며 이완용, 서재필 등이 출사하는 계기가 됐다.


○…1947년 - 한국의 독립운동가 여운형, 버마의 독립운동가 아웅 산 암살


▲ 여운형(呂運亨, 1886년 5월25일~1947년 7월19일)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1945년 8월에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9월부터 1946년 2월까지 조선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을 지내기도 했다.


구한 말 기독교의 평등사상을 수용해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교육·계몽 활동을 하다가 1907년 대한협회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안창호 연설에 감화돼 독립 운동에 투신했다.


외교관으로는 중국에 건너가 신한청년당 당수로 활동해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기획하는 일을 주도했고, 김규식 등을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했으며, 직접 일본을 찾아 담판을 짓기도 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임시 정부 외무부 차장 등을 지냈으며 한국노병회, 시사책진회, 중한호조사 결성에도 참여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 때 안창호, 김동삼과 함께 개조파로 활동했으나 임정을 떠났다.


이후 중화민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쑨원의 권유로 중국 국민당에 가담해 국공합작을 통한 중국 혁명운동과 반제국주의 운동에 활동했다.


1944년부터는 비밀 지하 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과 농민동맹을 결성하고, 해방 뒤 1945년 8월 안재홍 박헌영 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9월 조선인민공화국을 결성해 혼란 수습과 치안 유지 등의 활동을 했다.


1946년부터는 김규식, 안재홍과 함께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 합작 운동을 전개했으나 이를 반대하는 좌·우익 양측으로부터 테러를 10여 차례 당했으며, 좌파 단체의 주도권을 놓고 박헌영 등과 경합했다.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차량으로 이동 도중 백의사의 집행부장 김영철이 선정한 한지근(본명 이필형) 외 다섯 명의 저격을 받고 암살됐다.


사후 2005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 2008년 다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훈 1등)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여운홍의 친형이고, 철학자 박찬기의 외삼촌이다. 경기도 양근군(현재의 양평군) 출신이며, 호는 몽양(夢陽)이다.


▲ 보죠케 아웅 산(1915년 2월13일~1947년 7월19일)은 미얀마(버마)의 독립운동 혁명가, 정치인, 군인. 


버마의 독립에 결정적 공헌을 했으나, 그 자신은 독립 달성 6개월 전에 암살됐다. 그가 이끄는 단체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은 1947년 4월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해 7월 19일 내각요원과 함께 회의 중 암살당해 아웅 산 대신 우 누가 버마의 초대 총리에 취임하게 됐다.


현재까지 미얀마 국민들로부터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수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1949년 - 라오스, 프랑스로부터 독립


○…1965년 -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美 하와이서 사망


이승만(李承晩, 1875년 4월18일~1965년 7월19일)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 본관은 전주.


1960년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에 의해 부정선거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미국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사망했다. 장례는 대한민국에서 가족장으로 집행됐으며,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