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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연민 사이
  • 이병애
  • 승인 2016.05.3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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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애 칼럼 |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다. “노인과 어린이와 여자는 무조건 먼저 구하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그리고 위험 속에서도 언제나 민첩하고 용감하게 그 임무를 수행하여 수많은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다. 여성은 오랫동안 보호의 대상이었고 여성을 보호하는 것은 남성의 의무이자 명예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남성의 기사도 정신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 속의 판타지일 뿐이다.


급기야는 여성이 보호의 대상이기는커녕 혐오의 대상이 되었단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스물세 살 꽃다운 아가씨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참하게 흉기에 찔려 죽었다. 우리 모두를 경악케 했고 그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게 커져가고 있다. 그 파장을 차단하려는 듯 경찰은 이 사건을 처음 말과는 다르게 ‘여성 혐오 살인’이 아닌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사회적 현상으로 드러난 여성 혐오의 실태를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강남역 10번 출구를 뒤덮었던 수많은 포스트잇의 메시지와 여성혐오 대 남성혐오의 성대결로까지 치달리는 과열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신적으로 병든 것은 살인범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적 약자로서 이 병든 사회를 살아가야하는 여성들의 불안과 공포는 깊고 절실했으며 더 이상 강자도 아니면서 잠재적 가해자의 혐의를 받아야하는 남성들의 억울함과 뒤틀린 심사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아마도 극심한 경쟁 사회가 이성마저도 이끌림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삼게 하고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졌을 한정된 기회를 앗아가는 방해자로 여기도록 내몬 탓이 아닐까. 결국 여성 혐오 뒤에는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혐오가 깔려있다. 그 또한 무서운 일이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시인 중 한 사람인 알프레드 드 비니는 당대의 시인들이 여성을 아름답고 순결한 뮤즈로 이상화한 것과는 달리 여성에 대한 환멸과 부정적인 인식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여성은 배신자며 변덕스럽고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다. 애인의 배신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를 품고 살았던 그는 오랜 고뇌와 성찰 끝에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에게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다. 그러니 나약한 인간들끼리 서로 연민을 갖고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성의 나약함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존재가 바로 여성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여성을 사랑해야한다고 깨닫게 된다. 


비니가 말한 대로 우리는 모두 한없이 약한 존재다. 그런데 강남역의 살인자는 남성들은 건드리지 못하고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경쟁 사회에서 약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한 사회적 약자들을 배제하고 차별하여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한다. 여성, 장애인, 이민자, 난민들에 대한 혐오의 정서가 그러하다. 그러나 약한 것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어야 하고 나눔의 대상이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나약하니까. 아무래도 그게 맞는 말 같다.



*이병애(칼럼니스트, 번역가, 문학박사, 서울대한국외대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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