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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풍경’이 되는 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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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풍경’이 되는 라이딩
  • 김영미
  • 승인 2016.04.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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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두 바퀴로 보는 세종시


꽃 피는 사월이다. 예전 같으면 꽃놀이 한 번 못가고 봄을 보냈을 것이다. 세종시로 이사 와 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전거 타기’였다. 세종은 집을 나서면 바로 자전거 도로가 있는 천국이 다. 천천히 걸으며 금강길을 다 본다는 건 무리 기 때문에 초등 3학년 딸의 자전거를 탔다. 금 강의 은빛 물결이 반짝인다. 눈이 부시다. 바람 이라도 솔솔 불어오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 질 것만 같다. 한두리대교 위를 천천히 걷고 달 려본다면 누구나 이런 낭만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에 지친 나는 첫째 아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때 함께 사서 탔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천천히 밀면 서 인라인을 탔다. 신랑이 일을 마치고 돌아 오면 아이를 맡기고 아파트 주변을 또 한 시 간씩 탔다. 육아와 가사에서 해방된 듯한 자 유가 나를 매일 밤 그곳으로 데려갔다. 주부 로 살면서 처음 시작한 운동이었다.


세종시로 이사 온 첫날 밤, 그해 여름이었다. 실개천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에서 이곳이 사랑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 다. 세종에서는 새벽 강바람을 맞으며 금강변 을 여유롭게 산책했고, 가끔 쉬어 갈 수 있는 나 만의 기지국도 만들었다.


강물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주변을 황금빛 으로 불태웠고, 가슴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무지개를 좇는 아이처럼 해 를 따라가다가 출근하는 신랑과 등교하는 아 이들의 아침을 놓친 적도 있었다. 첫마을의 아름다운 사진을 카카오스토리, 밴드에 공유 하자 나를 아는 지인들은 ‘첫마을의 기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보는 풍경은 또 다르다. 햇살 이 속삭이고, 바람이 안내한다. 혼자 여유롭게 달리는 길은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 그저 바람 이 부는 곳으로 페달을 저어가 보이는 풍경과 마주하면 된다.


꽃피는 사월이면 자전거를 타고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자전거 세상을 만나게 해준 ‘귀인’ 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2013년 4월 지인의 소개로 ‘귀룽이’를 보러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귀룽이라는 단어가 내겐 얼마나 친숙하고 사랑 스럽게 들렸던지, 그 아이를 꼭 만나고 싶었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잎을 틔우고, 구름처럼 꽃 이 피는 풍성한 나무. 산림박물관에 가면 그 귀 룽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귀룽이와의 인연으로 한두리자전거동호회 (한자동) 회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자동 카페 가입 권유로 나의 자전거 타기는 새로운 향로 를 만났고, 4대강 종주를 목표로 삼게 됐다. 금 강 하구둑 종주는 세종시에서 제일 먼저 갖게 된 꿈이다. 그 여정은 동호회에서 이루어졌다. 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자전거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 다. 기어변속, 펑크 대처요령, 안전수칙, 회원들 을 위한 존중과 배려, 소중한 생명을 지켜주는 필수품인 헬맷과 불의의 사고시 허리를 보호해 주는 배낭 등. 혹시 동호회 가입을 두려워하는 여성분이 있다면 용기를 내 도전해 보기를 권 한다. 혼자서 타는 자전거 여행 너머의 더 큰 세 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5월 섬진강 종주길, 처음으로 중1 아 들을 데리고 갔다. 동호회 회원들은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오십이 넘은 어른이 되어서야 생전 처 음 섬진강 종주를 해보는데, 너는 엄마 잘 만나 서 어린 나이에 섬진강을 달려봤으니 얼마나 축복스런 인생인가!”


이 말은 곧 나에게도 해당된다. 자전거를 타 지 않았더라면, 동호회 가입을 하지 않았더라 면, 평생 누려보지 못할 행복을 얻었기 때문이 다. 주부가 주말 원정 라이딩을 위해 1박2일 또 는 3박4일의 시간을 비운다는 건 결코 쉽지 않 은 일이다. 한번은 송년회 모임 중 핸드폰 소리 를 듣지 못해 30여 통의 전화가 걸려온 걸 뒤늦 게 안 적이 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초인종 벨이 꺼져있고 자전거가 현관문 밖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남편이 얼마나 화가 나있을지 짐 작이 갔기 때문에 신랑 앞에서 석고대죄했다. 그날의 아찔함은 동호회 활동을 이어가는데 있 어서의 회초리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중3 아 들과 제주도 라이딩을 함께 다녀 올 수 있었던 것도 말없이 응원해 주고 신뢰해주는 신랑의 지원이 있었기에 감사를 드린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삼년이라고 말했던가. 지 금이 딱 그 시점이다. 자전거에 대한 열정으로 카페 운영에 정성을 쏟다보니 몸과 마음이 많 이 지쳤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이 주춤거리던 한자동에 봄바람이 일렁였다. 세종포스트에서 두 바퀴로 만난 세상, ‘천천히 보아야 아름답다’라는 타이틀로 기사가 실린 것이다. 덕분에 첫 라이딩을 기다리던 그 설렘 으로, 회원님들의 응원과 사랑으로 꽃비 내리 는 ‘4월’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 사는 냄새 풀풀 나는 동호회’를 기조로 남자들은 형님, 아우하며 돈독하게 지내고 여 성 회원들에게는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대하 는 게 수칙인 김익곤 회장님.


“사월엔 뭐할까, 고민되시는 분은 자전거를 타세요”라고 소개하는 ‘뭐할까’ 닉네임을 가진 자전거연맹 사무국장 김천식님.


“라이딩을 통해 경험한 일상은 또 다른 나를 잉태하게 하는 소중한 만남이자 이 모든 것이 고마운 날들의 합창”이라고 말하는 ‘그려’ 닉네 임을 가진 고영덕님.


“여름엔 시원한 숲이 있는 산으로 가요”, 임 도와 싱글을 즐기시는 ‘사내가요’ 닉네임을 가 진 박기운님. 


“아, 나도 닉네임을 멋진 걸로 만들었어야 하 는데”라면서도 제일 잘 어울리는 ‘밤톨’ 닉네임 으로 알찬 살림을 맡고 있는 총무 오병욱님.


“아직도 쓸만해! 내 나이가 어때서”. 74세 고 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자전거 안전교 실과 자전거 문화 정착을 위해 혼신의 힘을 불 태우는 자전거연맹 회장 곽연모님까지. 모두가 우리 자전거동호회를 이끌어 가는 주춧돌이다.


바야흐로 사월이다. 세종시에는 벚꽃길이 지천이다. 산림박물관 내 팔각정으로 가는 산 책로길, 공주 정안천 생태공원, 부용리 벚꽃길, 조천변 벚꽃터널, 고복저수지, 오송리 미호천 등. 사월 한 달 내내 꽃나비가 되어 자전거를 타 고 어디든 떠날 수 있다.


“자전거를 왜 타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자 전거를 사라”고 말하고 싶다. 꼭 비싼 자전거가 아니어도 좋다. 두 바퀴만 굴러간다면 어디든 안내해 줄 테니까. 조금 욕심을 부려 40km 이 상을 달리고 싶다면 엠티비 자전거를 사길 추 천하고 싶다. 안장에 앉는 순간 깊고 넓은 세계 로의 탐험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고도 또 내게 묻는다면 사람이 풍경이 되는 한줄 라이딩의 매력을 알려주고 싶다. 아무리 좋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해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다 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일인가. 나는 오래도 록 사람이 풍경이 되는 사진을 담고 싶다. 


꽃비 내리는 봄 길을 누군가와 ‘풍경’이 되어 달리고 있다면,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세상 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다”고. 이번 봄도 자전거를 타고 귀룽이를 만나러가야겠다.


세종시한두리자전거동호회 김영미




*독자 참여를 기다립니다.

시와 수필, 사진, 그림 등 지면에 담을 수 있는 어떤 장르도 좋습니다. 주변 이웃들과 문화적 감수성을 나누고자 하는 시민들을 위해 지면을 비워두겠습니다. 이메일을 보내 주세요.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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