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비례대표제, 이제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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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비례대표제, 이제 넘어서야 한다
  • 박권일
  • 승인 2016.04.0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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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 비례대표제




총선이 다가왔다. 각 당 비례대표 후보의 면면이 공개되자 다시 ‘비례대표 무용론’ 내지 ‘비례대표 폐지론’이 고개를 들었다. “함량미달” “1회용 의원” “쩜오(0.5) 의원” “미생(未生) 의원” “정파 보스의 쌈짓돈” 등 원색적인 표현이 여지없이 등장했다.


그러고 보면 비례대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례대표제는 1963년 6대 총선에서 소위 ‘전국구’로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그러니까 반세기가 넘도록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 중 상당수도 비례대표제에 회의적이다.


무용론폐지론에는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다. 크게 두 가지 질문으로 정리된다. 첫째, ‘비례대표제가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 지역 유권자에게 직접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점은 지역구 출신 의원에 비해 저평가 받는 최대의 이유다. 몇몇 당권 핵심에 의해 ‘간택’ 돼야 상위 순번을 얻을 수 있는 불투명한 선발 시스템은 끝없이 논란을 일으켜 왔다. 이는 곧 비례대표가 ‘사당화의 도구’ ‘계파정치의 온상’이라는 비판과 직결되기도 했다.


둘째, ‘비례대표 의원이 제도 취지에 걸맞은 효과를 내고 있는가’라는 질문. 이 질문은 다시 세 개로 쪼개어 볼 수 있다. 현 비례대표제가 단순다수제소선거구제라는 한국 선거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는가? 소수자약자를 대변하는가? 직능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는가? 비례대표제 무용론과 폐지론이 비등하는 것은 이 질문들에 대해 모두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제도를 없애고 국회의원 전부를 투표로 뽑자는 것이다.


항변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전국구(錢國區)’로 불리며 불법 정치자금 창구로 활용되던 시기에 비하면 오늘의 비례대표제는 제법 투명해졌다. 지역구 의원보다 의정활동을 잘한 비례대표 의원들도 적지 않다.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각광 받은 은수미, 김광진 의원도 비례대표였다.


하지만 이런 반론은 수세적이다.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무용론과 폐지론를 뒤엎을 정도로 강력하진 않다. 강한 반박은 비례대표제 확대론자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비례대표제를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례대표 확대론 역시 크게 두 가지 명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비례대표제는 민주주의’라는 명제다. 직접 투표로 뽑는다고 해서 그것이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처럼 소선거구제 하의 승자독식 원칙이 관철되는 선거제도에서는 엄청난 숫자의 사표가 발생한다. 유권자의 표가 의석으로 제대로 전환되지 않고, 한두 개 거대 정당이 실제 얻은 지지보다 훨씬 큰 권력을 독점한다는 소리다. 세계 36개국의 선거제도를 분석한 아렌트 레이파트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그저 비례대표제가 오랫동안 존재해왔을 뿐이지 단순다수제에 가까운 국가다. 지금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사표 문제를 충실히 교정하기엔 역부족이다.


둘째, ‘비례대표제는 중산층 이하 다수 시민에게 유리하다’는 명제다. 많은 연구들이 단순다수제 국가보다 비례대표제 국가가 더 부의 재분배에 적극적임을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서 비례대표제가 잘 관철되는 사회일수록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더 평등하다. 한국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한국보다 훨씬 평등한 사회인 유럽 몇몇 국가들은 공히 한국보다 강하고 정교한 비례대표 제도를 가지고 있다.


비례대표제 확대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사회의 비례대표제가 문제인 것이지 비례대표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제도 설계의 결함도 있고, 제도를 악용하거나 불투명하게 운영하는 기득권 정치인들의 문제도 있다. 분명한 건 비례대표제에 대한 염증이 확산될수록, 그리고 시민들이 비례대표제도로부터 눈을 돌릴수록 이득을 취하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 집단은 이를테면 당헌을 순식간에 뜯어고치고, 비례대표 명단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짓을 태연히 저지른다. 그냥 상식적으로 봐도 도덕적 문제가 많은 자를 당선권에 무더기로 올려놓기도 한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이 그랬고, 새누리당이 그랬다.


반면 정작 비례대표가 절실한 분야는 ‘전문성’ 논리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다. ‘비정규불안정 노동자 천만 명’ 시대라면서, 20대 총선을 앞두고 비정규불안정 노동자가 비례대표 당선권에 들어간 경우는 전무하다. 몇 해 전 그렇게 떠들썩하게 유행하던 ‘청년 비례대표’도 단물 다 빠졌다 싶은지 슬금슬금 사라지는 모양새다.


‘무늬만’ 비례대표제, 이제 넘어서야 한다. 늘 그렇지만 ‘어떻게’가 문제다. 거대 양당이 별다른 유인도 없는데 손해를 무릅쓰고 제도개혁에 나설 리가 없다. 우리 시민들 스스로가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해결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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