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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펑펑' 울게 만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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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펑펑' 울게 만든 여자
  • 이충건
  • 승인 2016.01.2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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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탐구 | 전통무용가 최영란


세월호 모티프로 관객 눈물바다 만든 ‘바다꽃’
조선 국문학자 김만중 ‘사모곡’도 몸으로 표현
신채호·지역설화 등 예술로 도시정체성 승화도


송골송골 눈물이 고인다. 그걸 또 언제 봤는지 옆 좌석 아들이 “아빠 울어?” 하고 묻는다. ‘이런, 초등학생 막내에게 들켜버리다니!’


어른 남자가 고작 애니메이션 보다가 눈물을 보였다. 마크 오스본의 ‘어린왕자’는 눈물샘을 자극한 영화였다. 그렇다. 나는 눈물이 많다. 은근히 즐기기까지 한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서다.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공연이 있다. 지난해 11월이었다.


관객 울음바다 빠트린 춤의 힘


2014년 각각 서울과 대전에서 초연했던 창작무용 ‘바다꽃’과 ‘김만중의 꿈’을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묶은 공연이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열렸다. 언제 불러도, 떠올리기만 해도 짠한 그 이름 ‘어머니!’ 사실 ‘어머니’만한 눈물소재도 없다. 짐작은 했지만 울컥 치밀어 오르게 하는 힘이 그 정도일지는 상상조차 못했다.


‘바다꽃’은 바다에서 사고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애통함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표현한 춤이다. 2014년 대한민국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든 ‘세월호’를 모티프로 했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보다 비통한 게 있을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엉엉’ ‘흑흑’ 소리까지 내가면서. 다행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니.


춤사위는 사람의 심장을 후벼 팠다. 억제된 분노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춤이란 게, 그것도 펑퍼짐한 한복 속에 몸을 숨긴 채 손짓과 동작만으로 가장 비통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김만중의 꿈’은 아들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이다. 스물한 살에 유복자를 낳아 홀로 키우신 어머니. 꽃보다 아름다웠던 여자, 그러나 오로지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던져버린 여자의 또 다른 이름 어머니! 귀향지에서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식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어머니. 죽어가면서도 타향 천리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대학시절 찬조연설로 총학생회장 두 명 배출


‘어머니’로 수많은 관객을 울린 춤꾼은 최영란(57)이다. 지난해부터 대전 예술가를 대표하는 대전예총 회장이지만, 정치적 자리보단 ‘춤꾼’임을 앞서 내세우는 사람이다.


‘전통무용가’ 최영란은 묻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딸 부잣집 셋째 딸이다. 아들 하나 보려고 딸을 다섯이나 낳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환경 덕에 딸들은 일찍부터 예술적 소양을 쌓았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무용을 했다. 워낙 활달해서 부모님이 시키는 일은 다 잘했다. 웅변도 하고 체육도 했다.


웅변은 전국대회만 나가면 꽤 큰 상을 받는 실력이었고, 체육은 전국대회 경남 대표로선발될 정도였다. 여고는 일반고를 다녔고 성적도 상위권이었지만 대학입시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면접 서류에 무용대회에 나가 문교부장관상 받은 스펙만 내세우면 될 일인데 웅변상 받은 것까지 자랑한 게 탈이었다. 교수들이 선동 잘하는 ‘운동권’으로 오해한 것. 1차 시험에 탈락하고서야 서울 물정 깨우친 그는 한양대 무용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으로는 서예를 했다. 부회장까지 하면서 대학미전에도 출전했다. 웅변도 계속해 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어쩐지 경상도, 그것도 억세기로 유명한 마산 억양이지만 발음 하나만큼은 또박또박하다. 그래서인지 총학생회장 선거 때면 그는 집중 스카우트 대상이 됐다. 요즘 정치에서 유행하는 ‘인재영입’ 1순위였다. 실제 그가 찬조 연설한 총학생회장이 두 명이다. 미모의 여학생이 지지연설을 하는데 어찌 표를 주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남편의 죽음… 춤으로 ‘슬픔을 흘려 보내다’


그가 사랑에 빠진 남자도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이었다. 대기업에 다녔는데, 중동 발령을 받는 바람에 4학년 때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남편도 없이 시집살이를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소문난 살림꾼이다. 지금도 적게는 10명, 많게는 30~40명씩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비닐하우스, 텃밭에서 키운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기 위해서다. 이런 일이 일 년에 20~30회는 벌어진다. 남편도 춤을 사랑했다. 아내가 곧 춤이었다. 일 년에 한 번은 반드시 ‘사랑나누기 최영란 전통춤’ 공연을 하는데, 올해로 스물 한 번째다. 꽃 대신 쌀을 기부 받아 소외된 이웃들에 전달하는 행사다. 남편은 이 행사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2010년 남편이 작고한 뒤에는 공연장에 쌓인 쌀 포대가 줄어 공연수익금만 기부하고 있다.


2011년 대전예당에서 초연한 ‘비류(沸流)’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당초 백제 비류왕을 테마로 스토리를 전개하기로 했지만, 곧 계획을 바꿨다. 자신의 심정을 맘껏 토로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슬픔을 슬기롭게 흘려보낸다’는 말뜻처럼 춤이 곧 치유였다. 관객들은 눈이 발개져서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어릴 때, 대학 다닐 때조차 잘 모르고 춤을 췄어요. 나이가 들면서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비로소 느꼈습니다. 춤이 곧 내 삶이 돼 버린 거죠.”


인간성 회복 메시지… ‘지역성’에도 관심


그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 인간성 회복과 지역성. ‘어머니’는 부모와 자식이란 가장 근본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바다꽃’과 ‘김만중의 꿈’이 그랬다. 특히 ‘김만중의 꿈’은 조선시대 숙종 때의 문인이었던 서포 김만중이 어머니 윤씨의 평생을 기록한 <정경부인 윤씨행장>을 소재로 삼았다.


김만중의 고향이 바로 대전이다. 그는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소설가”라고 극찬했다.


서포는 유배지인 경남 남해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접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러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써내려갔다. 결국 아들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김만중의 꿈’은 어머니를 향한 자식의 마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한 춤이다.


2007년 초연한 ‘바람 부딪쳐 울다’도 지역성이 강한 소재로 창작한 공연이다. 부사동칠석놀이.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했다.


부사동은 보문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전승되는 칠석놀이는 백제시대 두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백제시대에 부사동은 윗말과 아랫말로 나뉘어져 있었다. 두 마을은 견원지간. 말처녀 부용(芙蓉)과 아랫말 총각 사득(沙得)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신라가 백제를 침략하자 사득은 백제군으로 징집돼 전쟁터에서 죽는다. 부용은 보문산 선바위에서 사득을 그리워하다 실족해 죽는다. 몇 해가 지나 마을에 가뭄이 들어 샘물이 마른다. 윗말 한 노인의 꿈에 나타난 부용은 가뭄 해소의 대가로 사득과 영혼결혼을 제안한다. 아랫말 한 노인 꿈에도 사득이 나타나 부용과 같은 말을 건넨다. 윗말과 아랫말은 서로 화해하고 칠석날에 모여 고사를 지낸 후 영혼 결혼을 성사시킨다.



“무용은 삶의 전부… 몸 허락할 때까지”


그는 설화에 나타난 위대한 사랑의 힘을 군무, 2인무, 독무를 통해 표현했다. 34년간 대전에 살면서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에 보답이라도 하듯 지역성에 기반을 둔 다수의 작품을 선 보였다. 앞으로도 지역인물이나 전승된 이야기를 작품으로 꾸밀 생각이다. 대전 출신인 단재 신채호의 일생을 토대로 한 ‘단재의 하늘’은 대본까지 완성해 놨다.


“무용인이란 게 자랑스럽습니다. 무용은 내 삶의 전부입니다. 몸이 허락할 때까지 내게 주어진 춤꾼의 역할을 계속할 겁니다.” 발산하기보단 내면화하는 절제미, 원을 지향하는 곡선미, 몸과 마음의 결합을 통해서만 완성할 수 있는 한국 춤의 생명력. 춤꾼 최영란의 차기작을 학수고대한다.


최·영·란
1958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랐다. 마산제일여교, 한양대 무용과(77학번)를 졸업한 뒤 중앙대에서예 술학석사, 계명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전시립무용단 훈련장(현재의 부단장)을 역임한 뒤 2002년부터 목원대 스포츠건강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전예총 회장, 한국체육사학회 회장, 최영란예술단 단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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