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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신설학교 이름 짓기 ‘뜨거운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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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신설학교 이름 짓기 ‘뜨거운 감자’
  • 김재중
  • 승인 2015.02.1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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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명 ‘종촌’, 주민들 싫다는데 왜 굳이?

시민들, 시의원 낙선운동 압박
“동 이름도 바꾸자” 반발 확산

세종시 1-3생활권 종촌동 입주민들이 학군 내 신설 유치원과 초·중·고교 이름이 한글이름에서 ‘종촌’으로 변경된 것과 관련해 집단반발하고 있다. 교명 제정을 주관한 세종시교육청, 교명 변경을 주도한 일부 세종시의회 의원을 상대로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 중이다.

교육청 주무부서에 하루에만 수십 통의 항의전화가 걸려오는가 하면, 교명변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일부 시의원은 시민들로부터 ‘낙선운동’ 압박까지 받는 등 초유의 사태로 번져가고 있다.

‘한울’과 ‘종촌’이 경쟁한 사연

논란의 발단은 지난 9월 열린 시교육청 교명제정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원회)에서 비롯됐다. 다수의 자문위원회 위원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공모절차를 통해 접수된 교명 후보는 밀마루, 온누리, 큰나무, 마루, 들샘, 한빛 등이 있었는데 결국 옛 지명인 ‘민마루’와 현 동명인 ‘종촌’으로 후보군이 압축됐다. 그런데 민마루의 ‘민’이라는 말이 민머리 등과 같이 사용되기에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 ‘한울’이란 제3의 이름이 제안됐다. ‘한울’은 공모과정에서 다른 학교 이름으로 제안됐지만 채택되지 않은 이름이었다.

결국 최종 후보는 ‘한울’과 ‘종촌’으로 결정됐다. 9명의 자문위원이 표결 끝에 5대 4로 ‘한울’이란 한글이름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젊은 학부모들이 ‘종촌’이란 한자 이름에 반대할 것이란 교육계 현업에 종사하는 자문위원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시교육청은 자문위원회 결정을 토대로 지난달 20일 ‘한울’ 등 30개 신설학교 이름을 결정해 시의회에 ‘세종특별자치시 시립학교 설치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제출했다.

후폭풍, 아무도 예상치 못했나

그러나 세종시의회 교육위원회(위원장 박영송)는 시교육청 교명제정자문위원회 결정을 뒤집는다. 교육위는 지난달 27일 교육청이 제출한 조례안을 심사하면서 학교명 ‘한울’을 ‘종촌’으로 변경시켰다. 이 과정에 한솔동에 지역구를 둔 안찬영 의원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명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한 안 의원은 줄곧 학교명 ‘한울’에 반대의견을 냈고 시의회 조례안 심사에서 동료 의원들이 안 의원 주장을 수긍하면서 ‘종촌’에 힘이 실렸다. 또한 이런 결정에 대해 박영송 교육위원장이 최교진 교육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었고 최 교육감 역시 시의회 결정을 존중하며 특별히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교명변경에 나선 시의원들, 여기에 찬성한 교육감 모두 지금과 같은 시민들의 집단적 반발을 예상치 못한 셈이다.

안찬영 의원 “과도한 비난, 억울”

일부 시민들은 교명변경에 주도적으로 나선 안찬영 의원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지역 온라인커뮤니티에 소위 신상 털기나 협박성 글이 올라올 정도로 격앙된 분위기다. 안 의원은 “시민들의 뜻이 이런 줄 알았다면 교명변경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세를 낮추면서도 “당시엔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그는 “세종시라는 이름을 지을 때 ‘한울’도 후보군 중 하나였는데 특정 종교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배제된 적이 있다”며 “교육청 공모과정에서 시민들이 ‘한울’이란 이름을 제안했던 것도 아니고 교육청 공무원이 제안해 갑자기 후보가 된 만큼, ‘종촌’이란 지역 이름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도담동 개명논란’ 복사판?

비난이 잇따르자 시의회와 시교육청은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교명변경 건’이 이미 시의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공표 단계에 이른 만큼, 손바닥 뒤집듯 ‘종촌’이라는 이름의 학교명 결정을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없는 노릇이다.

현 시점에서는 어떻게 하면 성난 민심을 추스르고 명분까지 갖춰가며 이 문제를 빠르게 수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안찬영 의원 등 일부 세종시의원은 “최교진 교육감이 재의요청을 해 오면 주민 입장을 수용해 논란에 즉각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논란이 장기화되면 득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앞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월 유한식 당시 세종시장이 시의회가 의결한 ‘방축동 개명안’에 대해 재의요청을 한 전례가 있다. 당시 시의원들은 원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도담동을 방축동으로 개명하려 했으나, 신도시 입주예정자들의 반발에 밀려 개명안을 철회한 바 있다. 안 의원 등은 이번 학교명 논란도 그 때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교육청이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단체장의 재의요청은 월권이나 위법, 현저한 공익침해가 있는 경우에 가능한데, 이번 사안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조례 개정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 이름도 바꾸자’ 논란 확산

현재로선 ‘종촌’이란 이름으로 일단 신설학교를 개교하고 난 뒤, 학교구성원과 지역사회 의견을 취합해 학교 이름을 결정하고, 교육감이 개정안을 발의해 학교이름을 바꾸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본보 확인 결과, 교육청 실무진은 물론 세종시의회 박영송 교육위원장도 이런 해결 방법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란 인식이 집행부와 의회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방식으로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높다는 게 문제다. 성난 민심이 어디로 튈지 장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학교명이 아니라 아예 동명(洞名)을 바꾸자고 주장하고 나섰고 여기에 동조하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세종시에 동명개정 절차를 묻는 민원이 제기되는 등 구체적 움직임도 감지된다.  

윤형권 세종시의회 부의장은 “이번 논란으로 학교 이름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잘 드러났다”며 “교명제정자문위원회에 어떤 전문가가 참석해야 하는지, 교육수용자의 의견은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등을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기 위해 토론회 등을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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