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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그의 죽음 진상규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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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그의 죽음 진상규명해야
  • 이규봉(배재대학교 전산수학과)
  • 승인 201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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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 자전거 기행

1975년 8월 17일 정부는 장준하 선생이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에서 실족사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38년이 지난 2013년 3월 26일 비록 민간(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공동위원회)의 감식 결과지만 정부 발표를 뒤집는 주장이 나와 여론이 들끓었다.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정밀감식팀은 "장준하 선생이 머리를 가격당해 목이 손상돼서 즉사 했고, 이후 누군가 벼랑 밑으로 내던졌거나 추락해 엉덩이뼈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독립투사 중의 투사이며 나라와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통 보수주의자가 왜, 누구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 정부는 지금이라도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 50대 6명은 장준하 선생이 중국 서주에 있던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간 길을 자전거로 돌았다. 이유는 단 하나. 장준하 선생의 삶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해서다.

장준하 선생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학도병에 지원했다가 탈출해 중국 중앙군관학교 산하 한국광복군 훈련반에 입소, 소정의 훈련을 마치고 중국군 장교로 임관했다. 그가 일본군을 탈출한 학도병 등 50여명과 함께 서주에서 임천, 남양, 노하구, 파동 그리고 중경 임시정부청사에 도착하자 전 세계 언론은 일본의 조선지배가 강압적임을 보도했다.

그의 여정이 6000리에 이른다고 해 ‘장준하의 구국장정 육천리’라고 부른다. 이 구간을 선생처럼 걷기는 어려웠다. 대신 자전거로 따라가며 선생의 장정을 되새겨봤다.

자전거 순례단은 지난 6월 23일 북경을 경유해 강소성 서주로 갔다. 24일 서주 쓰카다 부대가 있던 현 공정병학원(工程兵學院)을 출발, 한국광복군 훈련반이 있던 임천제일중학교(臨泉第一中學校)와 중국 중앙군 남양전구사령부가 있었던 남양경제무역학교(南陽經濟貿易學校)를 방문했다. 노하구에서는 장준하 선생 일행이 신세를 많이 진 중국 중앙군 소속 이종인(李宗仁) 부대를 기념하는 역사박물관과 탈진한 장준하 선생을 진료한 복민의원(福民院)을 찾았다.

서주에서부터 노하구 30㎞ 밖까지는 끊임없는 평야로 그 거리가 800여㎞에 달했다. 이후 파동에 이르는 350여㎞는 산이었다. 매일 한두 번씩 해발 1500~1800m의 고개를 나흘간 오르내렸다. 파동에서는 기차를 타고 7월 6일 아침에 중경에 들어갔다. 중경 기차역에서 당시 장준하 선생이 행진하며 들어가는 것을 상상하며 순례단은 정렬하게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까지 10여㎞를 주행했다.

이 순례는 대전환경운동연합, 민족문제연구소, 임시정부사적지연구회, 장준하기념사업회의 후원을 받았으며 필자와 한남대 임동순, 대전대 전태일, 고병연(의사), 윤일선(의사), 임수현(남양주 자전거세상만들기협동조합 대표)이 함께했다. 이번 순례가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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