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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놀이 될 회의록 ‘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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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놀이 될 회의록 ‘까기’
  • 김선미(디트뉴스 주필)
  • 승인 2013.07.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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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 조직을 수렁으로 몬 국정원장의 ‘누설’

피 묻은 장갑은 수많은 정황 증거와 함께 누가 봐도 살인의 결정적 증거였다. 그러나 전 부인과 그의 애인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던 유력한 용의자, 미국프로풋볼 선수이자 배우였던 심슨은 무죄로 풀려났다. 결정적 증거라 믿었던 장갑은 재판의 증거물로 채택되지 않았다. 증거수집 절차와 방법의 적법성 여부가 문제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심슨은 형사재판에서는 무죄로 풀려났지만 유가족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패해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었다.

여의도 정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극심한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격 공개는 이십년 가까이 되는 심슨 사건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사건의 성격도 파장도 전혀 다르지만 어떤 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절차와 방법의 적법성 문제에서 그렇다.

국정원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발췌본을 공개한 데 이어 회의록 전문을 전격적으로 발표하며 격랑의 한 가운데 놓이게 됐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을 둘러싼 파문은 지난 대선 전에 이미 새누리당이 회의록을 ‘까기’로 했다는 정황까지 나오며 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새누리당은 서거한 전 대통령을 흠집 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역자’로 몰아가는 모양새다. 반면 민주당은 이에 맞서 새누리당과 국가정보기관이 손발을 맞춰 일으킨 대선 불법 개입에 이은 ‘제2의 국기문란’ ‘국정원의 쿠데타’라는 극한 비난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던 여야는 급기야는 국정원 자료가 아닌 대통령기록물을 공개키로 했다.

신의와 비밀을 원칙으로 하는 정상회담 외교관례를 국가기관이 나서서 깬 뒤의 후폭풍이다. 그것도 국정원 내부의 논의를 거친 것도 아니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독단적으로 군사작전 펴듯 전광석화로 밀어붙인 결과이다. 국가정보기관이 앞장서 룰을 깨는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 가감 없는 솔직한 기록물을 남기겠냐는 개탄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 선거 불법개입 의혹으로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 국정원이다. 이번에는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는커녕 대선 불법개입에 더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했다는 비판과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라는 오명을 더하게 됐다. 지난 대통령선거의 정당성을 야기할 수도 있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덮기 위한, 국가가 아닌 정권의 안위를 위한 몸 던지기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국가정보원(NIS). 더구나 여러 개 중의 하나인 공공기관이 아니다. 국가안보수호와 국익증진을 제1의 가치로 삼고 있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다. 정치적 중립성과 불개입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수장을 비롯한 일부 수뇌부의 특정 정치권과의 유착이 기관의 불신을 자초하며 묵묵히 책무를 다하고 있는 대다수의 정보맨들을 욕보이고 있는 것이다. 외신은 기밀로 분류된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파문을 보도하면서 국정원을 ‘누설자(Leaker)’로 표현하고 있다.

여야는 국정원이 그토록 막고 싶어 했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둘러싼 진상 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물론 국정조사가 실시되기 까지는 산 넘어 산으로 무수한 험로를 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이 선거 개입 혐의로 국정조사 대상이 된 것만으로도 이미 국민적 신뢰의 상당부분을 잃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국정원은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으로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결과 개혁을 강제당한 검찰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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