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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철학’도 없어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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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철학’도 없어진 시대
  • 김학용(디트뉴스 편집국장)
  • 승인 2013.07.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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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철학과 없애는 대학가

학문에도 귀하고 천한 구분은 있을 수 없다. 어떤 학과는 높고 귀하며 어떤 학과는 낮고 천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문의 성격에 따라 뿌리와 가지로 나눌 수는 있다. 뿌리는 기초학문, 가지는 실용학문이라 말해도 좋겠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다. 인문학도 자연과학도 그 정점에는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이나 ‘사물의 문제’를 탐구하는 과학도 학문의 궁극적 기반은 철학이다.

어떤 대단한 이론도 그것이 참인지, 현실적 가치는 있는지 등의 문제를 검증받으려면 철학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학문적 수단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관의 역할도 철학의 몫이다. 문학도 법학도 경제학도 물리학도 수학도 공학도 의학도 그 바탕은 철학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없앤다는 것은 학문의 뿌리를 잘라내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뿌리를 없애는 대학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충청권 최고의 사립대를 자처한다는 A대학이 철학과를 없애기로 했다.

‘개똥철학’에 그친 장삼이사들도 이를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A대도 명색이 대학인데 철학의 중요성을 모르겠는가? 이 대학이 철학과를 없애려는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철학과를 지원하는 학생이 자꾸 줄고, 철학과에 들어온 학생도 다른 길을 찾아 떠나며, 졸업하는 학생도 취업률이 떨어진다는 진단은 사실일 것이다.

철학과의 이런 지표가 한 대학의 전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대학별 성적표’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정부 지원을 못 받는 ‘부실대학’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부실대학으로 찍히면 학생들 모집이 더 어렵고 그래서 대학이 더 부실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철학과 폐지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철학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논리다. 철학이 ‘뿌리 학문’이긴 하지만 당장 써먹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경쟁력은 떨어질 수 있다.

철학뿐 아니라 웬만한 기초학문이나 인문학은 불리한 입장에 있다. 지방대에선 이런 학과들이 다 존폐의 기로에 있다. B대는 이미 작년에 철학과를 없앴다. 올해부턴 입학생을 뽑지 않고 있다. 주시경과 김소월을 배출했다는 C대는 올해 국문과까지 없앴다.

이들 대학들은 대신 항공승무원학과 실용음악과처럼 취업이 잘되는 ‘실용학과’를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 다 전문대에서나 개설하는 과목들이다. 4년제 대학들이 전문대 영역으로 내려가 ‘먹거리’를 빼앗아 오는 전략일 뿐이다.

철학과를 없앤 대학이 ‘부실대학’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좀 낮아질지 모르나 길게 보면 대학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는 불리할 것으로 본다. 철학과가 사라지면 종당에는 약간의 교양철학만 남게 될 것이다. 철학을 공부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 대학이 대학다운 대학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철학과 죽이기’는 정부가 휘둘러대는 ‘부실대학 낙인찍기’에 기인하고, 근본적으로는 대학수와 정원을 마구 늘린 탓이지만, 이에 대처하는 대학 스스로의 책임도 클 것이다. A대나 B대, C대 등등은 교수연봉이 전국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한다. 연봉으로 보면 꿇릴 게 없는 대학이 대학의 자존심 철학과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책임을 정부와 현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철학이 다른 학문과 융합을 통해 실용학문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데도 철학과 폐지를 서둘러 결정한 대학 측을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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