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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쉬운 음악천재의 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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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쉬운 음악천재의 자만
  • 성현기(팝칼럼니스트)
  • 승인 2013.02.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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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이하 E.L.O)가 우리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다가선 것은 1979년 앨범 <디스커버리(Discovery)>에 실린 ‘미드나잇 블루(Midnight Blue)’가 인기를 모으면서였다. ‘저 먼 곳에 이르는 고독한 길이 보입니다. 하루를 뒤로하고 떠나버린 희미한 불빛도 보이지만 제가 본 것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외로운 밤을 지새우는 당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로 시작되는 미드나이트 블루는 슬프고 아름다운 록발라드로 우리 감성에 잘 어울리는 곡이다.
E.L.O는 미드나이트 블루를 비롯해 ‘라스트 트레인 투 런던(Last Train To London)’, ‘돈 브링 미 다운(Don’t Bring Me Down)’ 등으로 국내 다운타운가와 방송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제프 린(Jeff Lynne)이 원맨밴드 형태로 나선 1981년 앨범 <타임(Time)>에 수록된 ‘티켓 투 더 문(Ticket To The Moon)’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필자는 7~8명의 멤버가 오케스트라의 틀을 유지하며 발표한 1972년 데뷔음반 <노 앤써(No Answer)>부터 1979년 <디스커버리> 음반까지를 선호하며 이들의 진수가 담긴 음악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1973년의 <E.L.O II> 앨범에 수록된 ‘롤 오버 베토벤(Roll Over Beethoven)’ 리메이크넘버를 비롯해 <엘도라도(Eldorado, 1974)>, <어 뉴 월드 레코드(A New World Record, 1976)>, <아웃 오브 더 블루(Out Of The Blue, 1977)>에서 <디스커버리>까지 이들의 음악은 탄탄한 구성력과 폭 넓은 스케일로 일렉트로니카와 심포닉 록의 역사를 만들었다. 동시대의 스틱스(Styx)와 캔자스(Kansas)가 심포닉 록을 완성도 높게 구사하며 크게 성공을 거두었지만 오케스트레이션 클래식프레임에 팝과 록을 접목한 E.L.O의 음악스케일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7~8인조(E.L.O는 8인조로 출발하여 전성기에는 7인조 라인업 구축) 대형밴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멤버(Jeff Lynne기타. 보컬, Roy Wood기타, Bev Bevan드럼, Richard Tandy건반, Kelly Groucutt베이스, Hugh Mc Dowell첼로, Melvyn Gale첼로, Mik Kaminski바이올린)들의 재능과 개성을 한데 모아 예술로 승화시켜야 하는데 사실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때론 개성강한 구성원들과 의견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아 멤버교체가 자주 반복되다보면 팀워크가 흔들려서 고단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제프 린 자신이 구성원 중에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 원맨밴드의 유혹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결국 1980년 혼자서 E.L.O를 독차지하며 올리비아 뉴튼존(Olivia Newton-John)이 주연한 영화 <제나두(Xanadu)>의 사운드트랙타이틀 곡 ‘제나두’를 프로듀싱하고, 1981년 ‘티켓 투 더 문’과 ‘홀드 온 타이트(Hold on Tight)’가 수록된 앨범 <타임>을 통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한사람의 재능으로 멤버들의 빈자리를 메울 수는 없었다. 스스로 한계를 느낀 제프 린은 1983년 팀을 떠났던 드러머 베번(Bev Bevan)을 합류시키고 1986년 앨범 <밸런스 오브 파워(Balance Of Power)>를 발표했지만 7~8인조가 협력해서 만들어냈던 소리의 구성력을 상실한 음악은 냉담한 반응과 함께 세월 속에 묻히고 말았다.
<밸런스 오브 파워>가 실패하자 제프 린은 음악프로듀서 활동에 전념하며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클라우드 나인(Cloud Nine, 1987)>에 참여했고 밥 딜런(Bob Dylan), 톰 패티(Tom Petty) 등과 함께 뮤직프로젝트를 시도하기도 했다. 옛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자 1990년에는 솔로로 나서 <암체어 씨어터(Armchair Theatre)>를 발표했다가 1988년 베번이 결성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II의 명칭사용을 문제 삼아 소송을 걸었던 것에 대한 비난의 여파로 언론과 팝 필드로부터 외면당하는 망신을 경험하게 된다. 비난과 좌절을 경험한 제프 린은 소리의 구성력을 절감하고 팀의 재건을 위해 지난날의 자만을 사과하며 옛 동료들을 설득했지만 리차드 탠디(Richard Tandy, 건반)만이 참여하게 된다. 다른 동료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그는 자만했던 과거를 후회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던 것이다.
젊은 날의 과욕과 자만이 불러온 결과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멤버를 보강하여 리차드 탠디와 함께 1990년부터 1999년까지 E.L.O Part II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이렇다 할 히트곡이 없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추억의 7080밴드쯤의 위치에서 10여년 가까이 버티다 해체되는 수모를 겪고 2001년 15년 만에 베스트앨범 <줌(Zoom)>을 발매하였다. ‘미드나이트 블루’, ‘텔레폰 라인(Telephone Line)’, ‘제나두’, ‘이빌 우먼(Evil Woman)’, ‘홀드 온 타이트’ 등의 히트곡과 <러브 스토리(Love Story)>에 이어 또 한편의 겨울로맨스로 자리 잡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의 예고편에 삽입된 ‘미스터 블루 스카이(Mr. Blue Sky)’ 등 20곡이 수록됐다. 이 앨범은 E.L.O 팬들의 향수를 달래주며 제프 린의 노후대책(?)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지만 필자가 이 음반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그의 든든한 노후대책을 시샘해서가 아니라 그가 <디스커버리> 이후에 보여준 음악적 행보가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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