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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불법 방치, 송두리째 사라진 '귀농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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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불법 방치, 송두리째 사라진 '귀농의 꿈'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7.03.15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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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지 구거(溝渠) 불법 점유, 한 귀농인이 겪은 3년 간의 악몽

 

“30년간의 서울 살이 끝에 전 재산을 털어 귀농했습니다. 지금은 수년간 불법을 묵인하고 방치한 세종시가 밉고, 후회스럽습니다.”


국유지가 수년간 개인 용도로 불법 점유돼왔음에도 정작 지도·단속 권한이 있는 시에서는 강력한 제재 없이 그대로 방치하고 있어 직무 유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씨는 지난 3년간 인근 땅 주인의 구거(溝渠) 불법 점유 때문에 정신적·재산적 피해를 입어왔다. 농업용수를 대기 어려워 비닐하우스는 무용지물이 됐고, 농막 설치도 3년째 지체되고 있다.


구거는 용수 또는 배수를 위해 일정한 형태를 갖춘 인공적인 수로·둑 및 그 부속시설물의 부지와 자연의 유수(流水)가 있거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규모 수로 부지를 말한다. 지자체의 점용허가 없이는 점유할 수 없으며 건축물 설치도 불가하다.


국유지 무단 점거 방치, 후회만 남긴 귀농의 꿈

 

 

세종시로 귀농을 준비하던 이 씨는 지난 2014년 1월 세종시 연서면에 위치한 농지를 구매했다. 하지만 구거를 사이로 마주보고 있던 땅 주인 A씨는 구거 경계선을 따라 쇠파이프 말뚝과 가시 돋친 철망을 수년간 방치해왔다. A씨의 선친이 운영하던 사슴농장의 흔적이다.


A씨는 얼마 뒤 구거 내 일부 구간에 펜스를 설치, 차량 통행은 물론 보행까지 방해했다. 이 씨는 이 펜스로 인해 도랑으로부터 농업용수를 공급받지 못해 농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금방 해결되리라 믿고 설치한 비닐하우스도 다시 허물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 여름 더위를 식히고, 농기구를 보관할 수 있는 농막 설치도 불가능해졌다. 불법 설치된 펜스로 인해 크레인과 차량이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퇴 후 농사를 지으며 세종시에 정착하려던 이 씨의 꿈은 3년 사이 송두리째 좌절됐다. 


이 씨는 “과거 현장조사에 나온 공무원은 불법건축물에 해당하는 오두막 한 채에 대해서만 과태료를 부과했다”며 “애초에 제대로 측량해 무단 점거한 구거 면적과 불법건축물을 적발해 제대로 된 과태료를 부과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6년간 불법 방치한 세종시의 직무유기?


해당 구거는 농림축산식품부 소유 국유지에 속하며 관리주체는 세종시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현장 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태료 대상지는 오두막 한 채에 불과했다. 총 3차까지 철거 명령이 내려졌지만 실행되지 않은 채 수년간 방치됐다.


5년 소급기간을 합쳐 지난 2015년 최초 부과된 변상금도 200여만 원에 불과했다. 철거가 이뤄지지 않자 시는 2016년 1년 치 변상금을 다시 부과했지만 금액은 50여만 원에 그쳤다. 국유지를 무단 점거하고, 불법 시설물을 설치한 것도 모자라 주변 농업인에게 피해를 입힌 처벌이 6년간 총 250여만 원에 불과한 셈이다.


이 씨는 “애초에 무단 점거 면적과 불법건축물 모두가 과태료 부과 대상에 포함된 것이 아니어서 당사자로서는 철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며 “돈 몇 백만 원 내면 몇 년이고 국유지를 막고 사유화해도 된다는 것인지 결국 세종시가 불법을 방치해 정당화시킨 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리 주체인 세종시가 국유지를 마음대로 사유화하도록 직무유기한 것”이라며 “성묘객들 역시 제대로 된 길로 다니지 못하고 있고, 산불이 나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어 2차 피해도 우려된다”고 했다.


농어촌정비법 128조와 국유재산법 74조에 따르면, 지자체는 국유지에 해당하는 구거의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점유하거나 설치한 시설물에 대해 원상회복을 명령할 수 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강제 철거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대집행은 공익을 심하게 침해하는 경우 등 기준이 있어 강제 철거가 쉽지는 않다”며 “빠른 시일 내에 확실한 무단 점유 면적을 측량해 5년 소급 적용된 변상금을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변상금은 면적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기존 금액보다 훨씬 많아 질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귀농귀촌협의회 찾아 자문, “귀농인 고충, 어디서 받아주나”

 

 

시 담당공무원이 이 업무를 보기 시작한 건 겨우 한 달. 이 기간 담당자가 접수한 구거 무단 점유 및 불법시설물 설치 관련 민원만 10여 건에 이른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기준 무단점유 국유재산 가액을 4조 1832억 원, 총 10만 530필지로 집계했으며 공시지가의 5%로 규정된 국유재산 대부료(貸付料)의 120%를 부과했던 변상금을 최대 200%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씨는 최근 세종시 귀농귀촌협의회를 찾아 3년 간 속앓이 해 온 이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귀농해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귀농귀촌협의회 김탁진 회장은 “이 경우 전용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점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소유자인 농림수산식품부와 관리 주체인 시에 진정을 넣고, 지상물에 대한 벌금이 아닌 원천적인 철거를 요구해야 한다”며 “철거가 되지 않을 경우 제3자로서 시에서도 형사고발 조치 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세종시 귀농인의 경우 실제 비슷한 사례가 있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그는 “귀농인의 경우 인적 네트워크가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에 각종 문제로 고충이 있을 때 자문을 구할 곳이 없어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비슷한 사례들이 많은데 결국 귀농귀촌협의회를 찾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원책이 전무한 세종시를 선택해 귀농한 이들의 경우 기존 농업인들과의 갈등이나 어울림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며 “향후에는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기관이나 센터 설립도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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