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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읽는 아이콘 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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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읽는 아이콘 책력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12.13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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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이 깊어 가는 동짓달에 접어들었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면서 서서히 임진년(壬辰年)이 저물고 계사년(癸巳年)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이맘때 가장 많이 서로 주고 받는 것이 '다이어리(diary)'이다. 기업체나 관공서, 개인별로 각각의 개성을 담아 홍보판촉물의 일환으로 서로 주고받고 있다. 이러한 다이어리는 한 해를 살아가는데 일정관리를 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전통사회에서도 동짓달이면 의례히 일년의 달력에 해당되는 책력(冊曆)을 주고받는 풍속이 있었다. 이를 동지책력(冬至冊曆)이라 하였다. 책력이든, 다이어리든, 이는 바로 한 해를 읽는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 전통방위표-나경
일 년 열두 달을 살아가면서 기후를 읽고 생활의 계획을 세우며, 가정의 대소사(大少事)를 세우는데 중요한 것이 바로 달력이다. 태음력을 기준으로 살아온 전통사회에서 농사를 짓는 시기를 알고, 가정의 대소사를 치르기 위해 생기복덕이 충만한 좋은 날을 택일하는 기준을 잡아 주는 것이 바로 책력(冊曆)이였다.
이러한 책력에는 일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 일진, 이사, 장례, 농사 등 여러 정보를 날짜의 순서에 따라 적혀 있는데 바로 역서(曆書)인 샘이다.

책력과 관련된 풍속 중에 ‘하선동력(夏扇冬曆)’이란 말이 있다. 동지에는 부채를 선물하고 동지에는 책력을 선물하는 풍속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책력 보아가며 밥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책력을 보아 가며 좋은 날을 택해 밥을 먹는다는 뜻인데, 바로 살림이 어려워 끼니를 자주 굶는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아울러 ‘책력반사(冊曆頒賜)’라 하여 해마다 동짓날 관상감(觀象監)에서, 다음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중에 헌납하면 그것을 관리와 각 지방 관청에 나누어 주고, 또 그것을 지인이나 친지들에게 동지의 선물로 나누어 주던 풍속이 있었는데 동지책력(冬至冊曆)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동지책력은 표지 색깔에 따라 황장력(黃粧曆), 청장력(靑粧曆), 백장력(白粧曆)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 전통나침판- 패철
책력에는 다음해 일 년동안 일상생활에 관련된 일들이 기록되어 있고, 농사의 시기를 알려 주고 있어, 농경을 근본을 살아온 우리민족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으로, 국가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업의 하나로 여겨왔으며, 왕은 가장 먼저 할 일로 인식하여 책력간행을 선양하였다. 이러한 책력간행은 역서의 내용에 일상생활과 관련된 일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관상감(觀象監)을 설치하여 매년 책력을 편찬하도록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지역적 차이로 인해 중국에서 반포한 역서(曆書)를 그대로 사용할 경우 시기와 절후가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 간 동지사(冬至使)가 역서를 국내에 들여와 사용하기에는 시일이 많이 걸려 먼 지방 사람은 절후의 빠르고 늦은 것을 알지 못하여 농사일에 때를 놓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지사는 동지무렵 정기적으로 중국에 사신을 보내던 관행으로, 동지 전후에 출발해 섣달 그믐 안으로 베이징(北京)에 도착해서 40~60일 묵은 후 이듬해 2월 무렵에 떠나 3월말이나 4월초에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편찬된 책력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옛 풍속에 동짓날 책력을 내려 준다. 시골과 여항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은 서로 주고받는데, 그것을 ‘동지책력(冬至冊曆)’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며,『서운관지(書雲觀志)』에는 "국초에는 진헌 외에 서운관에서 4천 건을 인출하여 중앙 및 지방의 관아와 종친, 문무당상관 이상에게 반사하였다."라고 하여 이미 조선초기부터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관상감에서 이듬 해 책력을 진상하면 임금께서 친히 내려 주신다. 상품(上品)은 모두 줄로 동여 장식[粧䌙]하고, 그 다음은 청장력과 백력(白曆)·월력(月曆)·상력(常曆) 등 각양각색인데, 종이의 품질과 꾸민 모양에 따라 차별을 두었다. 서울 관서의 각 부처에는 미리 종이를 마련했다가 관상감에 맡겨 인쇄토록 하고, 장관(長官)과 관료[朗僚]들에게 차등 있게 나누어 주어, 고향 친지와 이웃에게 선물로 보낼 수 있게 한다. 이조(吏曹)의 서리(胥吏)는 고관[搢紳]의 집을 나누어 담당하였으며, 맡은 집으로 한 사람 이상의 이름이 전랑(銓郞)에 속해 있는 집에는 의례 청장력 한 건(件)을 증정한다."라고 하여 동지책력의 반포 경위와 인쇄 종이의 품질과 꾸민 모양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관상감에서 역서를 진상하면, ‘동문지보(同文之寶)’라 새긴 옥새(玉璽)를 찍은 황장력과 백장력을 모든 관원에게 내려 준다. 여러 관서도 모두 나누어 받는 몫이 있으며, 각 관서의 아전들도 각기 친한 사람을 두루 문안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조의 아전들 중에는 특정 벼슬아치 집에서 임명장을 도맡아 써 주는 일을 맡은 자가 있는데, 그 집안 사람이 지방 수령으로 나가게 되면 그에게 당참전(堂參錢)을 주기 때문에 의례 청장력 한 권을 바친다."라고 하여, 책력에는 반드시 옥새를 찍어서 반포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이외에도 『면암집(勉菴集)』에 수록된 「세시기속(歲時記俗)」에도 "동지를 아세(亞歲)라 하니, 이날 모든 관리들의 문안은 설날의 의례와 같다. 관상감에서는 새 달력을 인쇄하여 이 날에 비로소 반포하니, 청장력·백장력·월력·중력(中曆)·상력 등의 명품(名品)이 있다."라고 하여 동짓날 관리들이 문안할 때 책력을 나누어 주고 있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달력은 천문대가 관측하고 천문연구원에서 표준으로 잡은 것을 바탕으로 11월 중순에 새해 달력을 발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책력이 사라지고 근대화의 과정에서 다양한 달력이 발행되어 각 가정에 전달이 되었다. 특히 1950~60년대에는 가장 흔했던 달력이 그 지역 국회의원이 선거구 유권자 집에 배포하는 1장짜리 연력(年曆)이었다. 이 달력에는 흑백사진으로 국회의사당의 모습을 담았고, 모심고, 논매고, 비료주고, 수확하는 시기를 기재한 농사정보가 빽빽하게 들어 있는 달력이였다. 또한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는 주로 영화배우·모델들의 화려한 의상 달력들이 유행하였으며, 그 후 달력의 사진은 세월이 흐르면서 전국의 경치 좋은 명승지 등이 선호되었으나 현대화, 도시화의 가속으로 현대에는 고향, 전통문화풍경등이 달력의 그림으로 선호되고 있다.
현대 정보통신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으로 달력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모든 일정관리나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활용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여전히 집안의 대소사나 중대한 택일은 여전히 책력이 활용되고 있다. 우수한 조상들의 정신문화는 현대의 과학기술발달에도 면면히 전승되어 오고 있음이다. 올 동지에는 책력과 달력을 선물하는 기치를 발휘하여 일 년의 생기복덕을 미리 살 펴보고 건강한 한 해를 설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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