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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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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의 열정
  • 지영철
  • 승인 2012.08.1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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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인천공항에서 이륙해 약 2시간40여분만에 중국 서안 함안(시엔안 : 咸安)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이선자 중경임정청사 부관장이 한국 조사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주영 조사단장은 이선자 부관장에 대해 "한중 양국의 공동항일투쟁사를 복원하는데 그의 열정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라며 맹렬 여성이라고 극찬했다. 공항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친 후 바로 한국광복군 제2지대 주둔지였던 중국 장안구 두곡진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이번 중국 화북지역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 대장정이 시작됐다.

▲ 한국광복군 제2주둔지

중국 산시성 시안시 장안현 두곡진에 위치한 한국광복군 제2지대는 1942년 4월 22일 초기에 편성되었던 광복군 제1지대(산서성), 제2지대(수원성 포두), 제5지대(서안)가 통합되면서 창설되었다.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하여 제1지대가 되면서 종전 지대의 개편이 불가피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5지대 내에서 지대장 나월한 암살사건이 발생, 광복군의 주력부대인 5지대가 동요하자 광복군은 이를 수습하기 위한 조치로 기존 3개 지대의 통합을 서둘러 진행하였다. 제2지대는 이범석 지대장을 중심으로 30여명으로 구성되었다. 제2지대는 창설 직후 서안시내에서 이부가 4호에 있던 광복군총사령부와 함께 주둔하고 있다가 1942년 9월 광복군총사령부가 중경으로 이전한 뒤로 서안시 외곽에 있는 현재 두곡진으로 옮겨졌다. 주둔지를 옮긴 이유는 당시 그 인근 왕곡에 호종남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군사에 필요한 물적·인적 자원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2지대는 화북지역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초모활동이었으며 이를 통해 병력증강에 역점을 두었던 곳이다. 현재 이곳은 당시의 건물은 없어지고 현재 양곡창고가 되어 있었다. 국외독립운동 실태조사에서 첫 대면한 우리의 역사의 흔적은 당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곳이 독립운동의 사적지임을 확인시키는 건 GPS수신기가 가리키는 위도, 경도 수치였다. 우리 민족사에 중요한 사적지에 표지석 하나 없이 사라져가는 상황에 대한 대안은 없는 것인가? 해외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사적지가 집중된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은 사적지 보존과 복원에 난관이 있다. 중국정부가 역사문제와 일본·북한 등과의 정치적 문제를 이유로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픈 현실을 마라보며 한국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 숙소가 있었다는 마을로 이동했다.

▲ 한국광복군 제2주둔지 입구
▲ 한국광복군 제2주둔지 인근마을 모습
▲ 한국광복군 제2주둔지 전경. 양곡창고로 사용중

한국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 관사는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제1·2·5지대가 제2지대로 통합되고 중경에서 머물고 있던 이범석 장군이 1942년 10월 서안으로 건너오면서 머물렀던 숙소이다.
제2지대 본부에서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숙소는 당시 모습은 사라지고 현재 현주민이 살고 있었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국에서 온 조사단원들에게 새롭게 세운 대문을 가리키며 이곳이 이범석이 살던 곳이라고 증언했다. 집안으로 조사단원들이 들어서자 집 마당 가운데에 70년이 넘은 감나무가 있어 이곳이 이범석 지대장의 옛 숙소였음을 알 수 있었다.

▲ 한국광복군 제2주둔지 전경
▲ 이범석 지대장 숙소
▲ 한국광복군 제2주둔지 전경
▲ 한국광복군 제2지대 숙소옛터 추정 주민 증언
▲ 한국광복군 제2주둔지 영상기록
▲ 한국광복군 제2주둔지 인근마을 주민증언
▲ 이범석 지대장 숙소 현거주민 증언과 마당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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