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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어떻게 만들 건지부터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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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어떻게 만들 건지부터 고민해야”
  • 이충건 기자
  • 승인 2017.03.1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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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700석 아트센터, 지역예술 공간 불과… 세종시, 타당성만으로 건설해선 안 돼
문화로 소속감 높여야 고급인력 유입,
짓는 것보다 어떻게 운영할지가 우선
운영 맡을 세종시, ‘마스터플랜’ 있나… 문화 인프라 못 갖추면 무미건조해져


 

 

아트센터와 국립박물관단지. 세종시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문화 인프라다. 빠르면 10월말께 이들 두 시설이 행복도시에 어떤 규모로, 어떤 모습으로 지어질지 판가름 날 예정이다. 세종시가 정말 세계적인 멋진 도시가 되려면 문화적 가치를 중시하는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생 배우로 살았고 국립극장장,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낸 김명곤(61) 전 장관을 만나 세종시가 나아가야 할 문화예술도시로서의 방향을 물었다. 최근 관객 1700만 명을 돌파한 <명량>에서 조선 지배의 야욕에 가득 찬 왜국 수장 도도 역을 맡았던 그를 전북 전주한옥마을 인근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편집자>


행복도시 세종시가 우여곡절 끝에 정상 건설되는 과정에 있다.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입장에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어떤가.

 

“찬반이 많았지만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에 골고루 나눠주자는 분권 철학의 핵심에 세종시가 있었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세종시를 건설한다는 취지에 여야가 공감해 행정중심복합도시란 이름으로 세종시가 출범했다. 지금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여러 문제점이 남아 있지만 도시가 잘 만들어져 행복도시란 이름에 걸 맞는 위상을 갖기를 희망한다. 세종시 건설에 소신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일을 잘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행복도시 세종시가 글로벌 명품도시가 되려면 문화 예술적 가치가 살아 숨 쉬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도처가 건설현장이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말들을 많이 하더라.

 

“일반적으로 신도시를 건설 하다보면 편의시설, 교육, 문화 등이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아무래도 모든 콘셉트가 행정의 편의성에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도시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삶의 질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문제는 문화와 교육이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나눠보자. 당장 아트센터를 짓는 문제가 행복도시 세종시의 현안으로 대두됐다. 당초 대극장 규모가 700석으로 예비타당성 결과가 나왔다. 이 정도 규모로는 세종시 위상에 맞지 않는 데다 늘어나는 인구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여론이 크다. 700석으로 어떤 공연을 할 수 있나.

 

“700석은 일반적으로 대도시나 중소도시에 지어지는 문예회관이나 아트센터와 비교해도 매우 작은 규모다. 이 정도로는 규모 있는 오페라, 발레, 뮤지컬 등은 유치할 수 없다. 작은 규모의 지역예술을 위한 공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의 적은 인구수를 기준으로 타당성 조사가 이뤄지다보니 경제성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게 투자 대비 수익을 보고 평가를 하는 것 아닌가. 주민 수와 대비하면 큰 규모의 극장이 타당하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세종시가 타당성 조사라는 결론을 가지고 건설하는 도시는 아니지 않은가. 타당성 조사는 의견일 뿐이다. 지금은 주민 수와 대비해 이런저런 정도의 수익이 나온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10년 뒤, 20년 뒤 도시의 발전과 비전을 보고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세종시와 그리 멀지 않은 대전, 청주, 천안 등에 상당한 규모의 문예전당들이 이미 건립돼 운영 중인 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세종시는 여타 도시와 성격이 다른 행정중심의 신수도다. 자칫하면 도시가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아파트촌으로 건설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하숙집과 뭐가 다르겠나.

 

공무원을 비롯해 고급인력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도시가 세종시다. 그런데 문화와 교육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면 다시 세종시를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와 교육에 대한 투자는 상당히 중요하다.

 

국가행정이 원활해지고 유능한 행정가들이 세종시에 와서 일하도록 만들려면 그들은 물론 그들 자녀와 가족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줘야 한다. 그들이 대전이나 천안에 가서 영화나 연극을 본다면 세종시에 대한 소속감과 애정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 

 

서울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문화콘텐츠들을 세종시에서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세종시만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규모만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건립 후 운영예산도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겠나.

 

“당연하다. 규모가 늘어나면 단순히 사업비만 1.5배, 2배 증가하는 게 아니다. 운영예산, 인력 등 모든 게 2배, 3배 늘어날 것이다. 어떤 주체가 어떤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운영할 것인지, 극장을 상시로 운영하는데 어느 정도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준비가 철저히 이뤄져 있어야 한다. 준비도 없이 크게 짓겠다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말씀을 듣다보니 세종시가 어떻게 준비를 해왔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잘 모르실테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행복도시 건설에 대한 권한은 행복도시건설청에 있다. 세종시는 지어진 시설을 이관 받는 정도다. 그동안 세종시와 행복청이 서로 스마트한 협력관계를 맺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아트센터를 세종시가 운영하기로 했다면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앞서 말했지만 극장을 어느 정도 규모로 짓느냐가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플랜을 가지고 있느냐가 먼저다. 플랜이 있어야 어떤 규모로 극장을 지을지 결정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운영비만 낭비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렇다면 어떤 플랜이냐. 10년, 20년 뒤까지 내다보는 마스터플랜이어야 한다.”

 

지난 6·4지방선거를 통해 초대 행복청장을 지낸 사람이 세종시장이 됐다. 일단 세종시와 행복청 사이의 소통은 훨씬 원활해 진 것 같다. 그런데 문화정책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내 귀에는 ‘문화도시’라는 구호만 들린다.

 

“일반적으로 아트센터라고 할 정도의 극장을 지으려면 그 도시의 시장, 행정담당자의 의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세종시라는 도시가 행정의 중심이 되려면 문화의 중심을 만들려는 노력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 극장이란 게 기본적으로 공연을 소화해내는 공간 아니냐. 어떤 공연을 세종시민들에게 보여 줄 것인지, 시민들을 문화적으로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 목표설정이 중요하다. 비전과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어야 예산부처도 설득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한 채 크게만 짓겠다고 하는 것이라면 유감이다. 아트센터 운영조직의 성격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세종시 산하로 둬 직접 관할할 것인지, 재단을 만들어 간접 운영할 것인지, 아니면 민간 위탁 운영으로 할 것인지. 도시마다 여러 경우가 있다. 성공사례도 있고 실패사례도 있다. 세종시에 소속된 예술단을 만들 것인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총체적인 플랜이 마련돼야 한다.”

 

서울에서 화제가 되고, 외국에서 화제가 된 공연을 세종시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700석 규모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행복도시건설청도 이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현재 기재부에서 유례없이 예비타당성 재조사를 진행 중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부터 1200석짜리 극장을 만들어놓고 어떻게 관객을 채울 것이냐 걱정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도시발전이란 것은 예측하기 어렵다. 10년 뒤 그 극장이 좁아서 더 큰 극장 지어 달라, 더 큰 공연 오게 해 달라는 요구가 생기면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처음부터 도시 규모에 맞게 작게 지을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내다보고 처음부터 적당히 크게 지을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어떻게 짓는 것이 더 낭비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마스터플랜이 중요하다. 지은 것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정히 어렵다면 일단 부지를 확보해 놓고, 처음에는 도시규모에 맞게 지었다가 5년 뒤, 10년 뒤 추세를 봐서 대극장을 더 짓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부지 자체를 잘 확보해야 하는 전제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세종시가 품격 있는 문화도시가 되려면 여러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현재 국립박물관단지라고 해서 5개 박물관을 호수공원 중심으로 배치하는 사업도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문화 인프라가 왜 중요한가.

 

“문화 인프라는 단순히 수지타산으로만 계산할 수 없다. 국가나 지자체가 투자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문화적 가치, 정신적 가치에 대해 왜 투자를 해야 하는지 논리가 명확해야 한다.

 

지금의 문화개념은 우리가 경제발전을 추구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 살아왔던 시절의 개념과는 분명 다르다. 이제 선진국 진입을 위해 도전을 하고 있는 시점이다. 기본적인 경제활동을 넘어선 새로운 문화, 창조적인 국가이미지를 만들어가고 투자해야 한다.

 

이제 문화는 단순히 돈 쓰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가 국가의 경제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산업이 됐다. 세계적으로 문화산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뒤져서야 되겠나. 휴대폰을 만들어 싸게 판매할 때와 그 휴대폰을 최고 브랜드 가치를 지닌 삼성이 만들 때는 분명히 다르다. 다시 그 휴대폰으로 싸이의 뮤직비디오, 드라마 대장금을 본다고 생각해봐라. 그 가치가 또 달라지지 않느냐.

 

문화콘텐츠를 창조해서 파는 시대다. 남이 만든 것을 소비하고 수용만 하던 시대에서 창조하고 파는 위상으로 가고 있는 때인 만큼 문화적 창조력을 키우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국가와 지자체가 당연히 적극 나서야 한다. 수익성이 부족하니 안 된다고 볼 게 아니라 투자개념에서 봐야 한다. 특히 세종시는 도시를 새롭게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적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잘못하면 아무 특징도 없고 행정관청만 늘어선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도시가 될 수 있다.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이 워싱턴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강력한 문화적 이미지 구축이 필요하다.”

 

전주로 오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예전에 전주하면 비빔밥부터 생각났는데, 지금은 영화제부터 떠오른다. 정말 문화의 힘이란 게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세종시의 문화발전정책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많은 도시들이 축제, 영화제, 연극제 등을 개최하고 있다. 물론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다. 일단 잘 만들어 10, 20년 성공적으로 가면 그 도시의 이미지를 완전히 전 세계적으로 바꿔놓는 전파력이 있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세종시에 필요한 게 바로 이런 것이다.

 

토론토대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의 <도시와 창조계급>이라는 책이 있다. 미국 주요도시의 경제발전상황과 그 도시에 거주하는, 혹은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숫자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내린 결론이 한 도시에 예술가들이 많이 살면 살수록 도시발전이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그걸 보헤미안 지수라고 한다. 창조적인 계층, 문화예술인이 많이 사는 도시가 경제적으로도 정비례해서 발전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의 발전과 문화의 상관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세종시가 그런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문화 인프라를 갖춰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어떤 문화콘텐츠로 시민들을 만족시킬 것인지 마스터플랜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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