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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반갑다!” 고교졸업 30년 만에 만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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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반갑다!” 고교졸업 30년 만에 만난 친구들
  • 윤형권
  • 승인 2012.11.13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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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공주고 55회 졸업 동창생들 모교방문 행사… 장학금 1억원 전달

"반-만년 역 사위에 지나–간 자취, 전설도 무르익은 백제의 고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신사들이 주먹 쥔 오른손을 들고 내리며 노래를 부른다. 삼삼오오 서로 마주보며 웃음을 머금었지만,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서로 바라보면서 중저음을 내며 감회에 찬 표정들이다. 어떤 이는 머리가 벗겨져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어떤 이는 얼굴피부도 반질반질해 더 젊어 보인다. 또 어떤 이는 머리숱이 없는 삭발 스님이다. 개중에는 감격에 찼는지 눈물을 떨구면서도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모두 한마음으로 동화된 듯했다.

10일 오후 4시. 공주시에 있는 공주고등학교 강당에서 공주고 55회 졸업생들이 모교방문행사가 열렸다. 공주고는 올해 개교 90주년을 맞았다. 유서깊은 교정은 초겨울이면서도 아직은 은행잎이며 단풍나무 잎은 많이 달려 있다. 잎새는 마치 30년 만에 모교를 찾은 이들을 반기려고 바람을 견디기라도 한 듯….
넓은 운동장을 지나 약간 높은 곳에 있는 강당. 강당 입구에서 친구들이 서로 명찰을 달아주며 반갑게 악수를 나누느라 북새통이다.

"야! 너…, 이름이 뭐지? 겨-경수? 임경수지? 3학년 때 7반이었잖아" "어 그래 너는 용섭이? 용갑이인가? 용섭이가 맞지?"
서로 얼굴은 드문드문 알아보는데, 이름은 잘 모르는 듯 명찰을 보고서야 이름을 부른다. 30년 만에 불러보는 친구의 이름…. 기석이, 성구, 기배, 채성이, 경수, 용제…. 까까머리 앳된 얼굴이 진주알처럼 구슬이 되어 꿰어진다.

30년 전, 어느 늦은 가을날 오후. 하숙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농구공 하나 들고 십여 명이 모인다. 바지는 교복을 입은 채다. 흙바닥 농구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왁자지껄 소리를 지르며 놀기도 한 친구들이다.
운동장이 보이는 교실에서 음악 선생님이 선창하고 학생들이 따라 부르던 ‘선구자’와 ‘비목’은 요즘 노래방에서도 부른다는 용섭이도 왔다. 인근 공주여고 여학생들과 야밤 포도밭 미팅을 주선했던 종선이도 이제는 고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가 돼서 30년 전에 청운의 꿈을 꾸었던 교정에 돌아왔다.

2학년 때 태권도에 미쳐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렸다가 태권도장으로 달려가던 경수는 서울에서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이 돼서 돌아왔다. 짝사랑한 단발머리 여고생 때문에 깡소주를 마시면서 가슴앓이를 할 때 밤을 함께 새준 성구도 식당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돼서 30년 만에 돌아왔다.
고등학교 때 얌전하고 반듯한 생활을 한 학인이는 공무원이 돼서 청양군청에 근무한다며 반갑게 악수를 받아줬다.

의사가 된 친구, 교수가 돼서 돌아온 친구, 사업가, 언론인, 선생님, 공무원 등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직업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불 밝히며 공부하고 놀고, 목이 터질 듯 야구장에서 응원하던 그 친구들이 돌아왔다.
친구들만 돌아온 게 아니다. 선생님도 오셨다. 머리가 많이 벗겨진 노희창 국어 선생님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벗겨진 머리 그대로다. 깔끔한 이명구 생물 선생님, 강윤구 선생님, 기술 오동욱 선생님, 지리 신성순 선생님, 나운용 선생님, 화학 최영찬 선생님, 강흥구 선생님, 김상근 선생님이 오셨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은 은사님에게 선물을 드리고 큰절을 했다. 사실 당시에는 그리도 무서웠는데, 이날 강당에서 뵌 선생님이나 제자들이나 함께 나이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다.
늙은 제자를 만난 젊은 선생님이 말을 걸기가 쑥스러운 듯 그저 흐뭇하게 바라만 보고 계신다. 이내 "선생님 기석이입니다."라며 늙은 학생이 먼저 손을 잡자 그제 서야 30년 전 선생님으로 돌아간다.

졸업생 720명 중 이날 200여명이 모교를 찾았다. 강당 한쪽에는 졸업 앨범 얼굴사진이 대형걸개로 걸려있다. 사진을 보고 이름을 또 불러본다. 어떤 친구는 이 세상에 살지 않는 친구도 있다. 또 어떤 친구는 무슨 사정이 있는지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날 기념행사는 공주고 55회 졸업생 모임 서울지부, 중부지부, 공주, 대전지부 주관으로 치렀다. 지난해부터 7차례나 모임을 갖고 행사를 준비했다. 장학금도 1억원을 모금해 후배들에게 써달라고 배세환 교장(공주고 44회)에 전달했다. 정장교(42회) 총동문회 회장과 각 기수, 지역별 동문 대표가 이날 모임에 참석해 축하하며 함께 동문의 정을 나눴다.

강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밤늦도록 이어지며 초겨울 밤을 꼬박 새우고도 남았다.
윤형권 기자 yhk@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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