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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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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는 남자
  • 김수현
  • 승인 2012.08.09 0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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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치마총각 윤원식 씨

인터뷰가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은 ‘집념’ 보다는 ‘집착’이었고, ‘열정’보다는 ‘오기’였다.
‘치마를 입는 총각’ 윤원식(39세) 씨를 처음 만난 것은 7월 20일(금) 오후 6시경, 조치원 읍내의 아파트 단지에서였다. 머리에 파마를 하고 치마를 입었지만, 몸체는 남자라는 직감이 바로 들어왔다. 다른 약속이 있어 연락처를 주고받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다시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화물운송을 하는 윤 씨의 일이 워낙 바쁘고 유동적이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두 통 이상의 전화를 하며 일정을 조율했지만 쉽지 않았다. 심지어 이른 새벽이나 자정 무렵에 만나는 것도 추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내 30일(월) 오후 10시경 윤 씨의 아파트 앞에서 만났지만, 적합한 인터뷰 장소가 없어 고심 끝에 윤 씨의 일이 일찍 끝나는 다음날 오후 시간대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7월 31일(화) 오후 3시, 부강리의 작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14살에 홀로 선 소년, 외로움도, 꿈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정말 어렵게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있는 곳을 알고 왔는가?

아니다. 우연이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 화물차 운전을 하고 있다. 회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일이 정기적이지 않다. 그래서 시간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화물차를 운전한지 2년 반 정도 됐다.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적이 있는데?
(윤 씨는 2011년 3월 31일 방영된 ‘세상에 이런 일이’에 ‘치마총각’으로 소개된 바 있다.)
- 치마를 입게 되면서 소개된 적이 있다. 오창에 있는 판넬 회사에서 찍었다. 촬영을 허락하는 곳이 그 회사밖에 없었다.

부강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부강이 고향인가?
(정확히 윤 씨가 거주하는 곳은 연동면 명학4리의 아파트이고, 생활권은 부강리이다.)
- 아니다. 청원군 남이면 비룡리가 고향이고, 갈원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4살에 먹고살기 위해 부강으로 이사했다.

부강에 가족이 있었던 것인가?
- 외갓집이 있어서 형하고 여동생이 함께 왔다. 그러나 외가 형편이 안좋아서 곧 혼자 생활을 했다.

그럼 14살부터 혼자 생활을 했단 말인가?
- 그렇다. 안해본 일이 없다. 여름에는 양봉 일을 돕기도 하고, 겨울에는 막노동(속칭 ‘노가다’)을 하며 생활했다. 14살 이후 보호자 없이 생활했다.

그 이후의 생활은 어떠했는가?
-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계속할 여건이 아니었다. 군대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학력 미달과 청각 문제 등으로 인해 가질 못했다.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지만, 인연이 닿질 않았다.

화물 운송 이전에는 주로 어떤 일을 했는가?
- 부강에서 7~8년 정도 양봉 일을 직접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돈벌이가 쉽질 않았다. 세상에는 돈 버는 일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화물차 운전이 월급쟁이보다 낫다는 얘기가 있어서 지금 일을 시작했다.

치마는 나를 알리는 방편일 뿐,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입지 않는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치마를 입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화물차 하면서 열심히 일해도 반응도 없고, 신경쓰는 사람도 없었다. 짧은 시간에 나를 알릴 방법을 찾다가 치마를 입게 되었다.

그럼 자기 홍보(PR)의 방법으로 입었단 말인가?
- 그렇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을텐데?
- 엄청 망설였다. ‘미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을까 수백 번도 더 고민했다. 그러나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 우선 ‘나’란 사람을 보면 사람들이 잊지는 않으니까 좋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 때문에 웃는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 지금은 편하다. 다만 형이나 여동생, 조카들, 친구들을 만날 때는 치마를 입지 않는다. 기본적인 것은 지켜줘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 앞에서 욕하는 사람들은 없다. 일을 하지 않으면 모를까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게 봐주신다.

치마를 계속 입을 것인가?
- 그렇게 집착할 생각은 없다. 만약에 장가가서 여자가 싫어하면 입지 않을 것이다.

돈에 대한 집착보다는 소박하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꿈

외롭지는 않은가?
- 외로움 같은 것 모른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꿈은 무엇인가?
- 꿈이라? 글쎄 이것도 꿈일지 모르겠지만, 장가를 가고 싶다. 소박하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

주위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 경기도 안좋고, 날씨도 무더위이고 화물차 식구들 모두 안전운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 화물차가 항상대기하고 있으니 많은 분들이 불러줬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거의 끝날 즈음, 일하는 동료에게서 전화가 온 듯했다. "아이구, 형님!"으로 시작하여 "알겠습니다. 형님!"으로 통화를 끝낸다. 대전 쪽에서 일거리가 생겼는가 보다. 윤 씨는 사진을 찍고, 뜨거운 노동의 현장으로 다시 떠났다.
윤 씨는 인터뷰 내내 수줍음을 타면서도 솔직하고, 예의 바르게 사람을 대했다. 걸어온 삶은 강하였으나, 마음은 여린 사람이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그의 소박한 꿈이 꼭 이뤄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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