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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실리에 맞는 ‘용감한 결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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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실리에 맞는 ‘용감한 결단’을…
  • 송영웅 팀장(한국일보 신사업기획TF)
  • 승인 2016.08.16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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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웅의 경제포커스 |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 개최

강원 재정자립도 21.6%, 지방채 발행 감당 못해
스키 활강 6일 위해 가리왕산 원시림 훼손해야
무주리조트 등 타 시도 분산해도 위상 안 흔들려

지금부터 꼭 20년 전이다. 체육부 기자로 활동하던 1994년 겨울, 필자는 동계올림픽 취재를 위해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 갈 기회가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도 오슬로에서 북쪽으로 100㎞ 가량 떨어진 릴레함메르 올림픽선수촌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여기가 과연 올림픽 도시가 맞나’하는 것이었다. 주변에 민가나 상가라곤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고,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산골짜기에 메인 프레스센터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그것도 임시 가건물이었다. 올림픽경기장들은 기존 시설을 대부분 그대로 활용한 탓(?)에 자동차나 버스로 한참을 이동해야 도착할 만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기자들이 묵는 숙소도 나무로 만든 임시 건물이었다. 릴레함메르조직위원회는 환경 파괴와 자연 훼손을 최소화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숟가락이나 포크까지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 제공했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각국 취재기자들은 영하 20℃ 이하의 혹한 속에서 배고픔과 과로로 떨어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 개최가 체육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토머스 바흐 위원장이 중심이 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 8일 모나코 총회에서 올림픽 분산 개최를 골자로 한 개혁안 ‘어젠다 2020’을 확정짓고, 그 첫 시험 무대로 평창을 지목하면서 분산 개최에 불을 지폈다.

그간 정부의 재정지원이 부족하다며 수차례 “동계올림픽을 반환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강원도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는 최문순 강원지사와 조양호 조직위원장까지 나서 “분산 개최 절대 불가”를 선언하는 등 IOC 방침에 반발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도 분산 개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현 상황에서 강원도나 평창올림픽조직위가 분산 개최를 쉽게 용납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 번의 도전 만에 어렵게 따낸 대회이고, 강원도가 주관하는 사실상의 첫 국제대회인데 도지사나 조직위원장이 나서 분산 개최를 언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간 소외 받았다고 생각해온 강원도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올림픽을 유치한 덕분에 고속철도가 깔리고, 도로망이 확충되며, 경기장 건설이 시작되면서 유무형의 효과도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제 내막을 들여다보면 평창올림픽 이후의 강원도는 암울하기만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르기 위해선 6개 경기장 건설에 6993억 원, 진입도로 건설에 3552억 원, 급수체계 구축에 600억 원 등 총 1조 1145억 원의 투자비가 들어간다. 이 막대한 비용 중 정부가 75%를 지원할 것으로 보여, 강원도는 25%인 약 3000억 원 정도를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강원도의 재정자립도는 21.6%로 전국 평균(44.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전국 최하위권이다. 부채는 현재 5800억 원 수준인데, 앞으로 올림픽을 치르려면 1000~2000억 원 정도의 지방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강원도의 부채는 거의 7000~8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만성 적자인 강원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강원도는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알펜시아리조트를 짓는 바람에 9800억 원의 부채를 떠안게 된 강원도시개발공사의 채무에 대해서도 일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강릉에 신설되는 스피드스케이트장과 아이스하키1 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난 이후 철거하기로 했지만 나머지 경기장은 올림픽 이후 유지·관리에만 100억 원 정도가 매년 투입돼야 한다. 아무리 강원도의 자존심이 걸렸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분산 개최가 백번 맞다.

환경도 문제다. 정선군 가리왕산에 세워질 스키 활강코스는 500년 이상 된 원시림을 파헤쳐야 한다. 단 6일간 치러지는 스키 활강 경기를 위한 대가로는 너무 심하다.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렀던 무주리조트 코스를 보완하면 굳이 수 천년된 고목들을 훼손하지 않고도 대회를 치를 수 있다. 총 98개 세부 경기 중 스키활강과 스케이트 경기 몇 종목을 인근 시도에서 치른다고 해서 평창이 올림픽 개최도시로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린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무리하게 경기장을 지어 단독 개최를 고집했다가 대회 이후 재정적자로 도민이 힘들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올림픽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가까운 실례로 올해 9월에 치른 2014인천아시안게임에는 총 2조 2956억 원의 비용 중 인천시가 1조 2523억 원을 부담했는데, 이 여파로 인천시 재정은 말이 아니다. 올해 2월 역대 최대인 54조원을 들여 2014소치동계올림픽을 치른 러시아는 ‘사치 올림픽’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자존심에 억매이지 않은, 순리와 실리에 맞는 ‘용감한 결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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