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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K-슈퍼히어로를 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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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K-슈퍼히어로를 원했나
  • 권도경 세명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인문기술연구소 소
  • 승인 2014.12.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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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경의 인문기술 랩 | 집단 트라우마의 치유 ①‘주몽’을 중심으로

나라 멸망 후 중국 핍박 받던 고조선 유민의 아픔
주몽신화의 ‘동명왕편’ 개작과정서 민족 신화 개편
현대적 재생산 과정서 집단 트라우마 치유로 확대

한국고전 영웅서사 원형에서 영웅인 내가 부모·형제의 이념에 대립각을 세우며 구축하고자 하는 새로운 이념은 민중적인 지점에 입각해 있다. 민중의 집단적인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세계가 바로 부모의 자식이자 형제의 또 다른 형제인 영웅이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질서이다. 여기서 민중은 내 부모·형제와 남의 부모·형제를 포함한 집합체로, 우리의 부모·형제들이다. 일종의 부모·형제 트라우마 치유 과정의 민중 지향적 확산이자, 집단 트라우마 치유 과정의 일부로서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민본주의(民本主義) 이념의 구현을 통한 부모 트라우마의 궁극적인 치유다.

이 민중지향적인 위민(爲民)의 이념이 영웅에게 부모·형제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양상은, 영웅일대기로 완성되기 이전 단계의 신화적 영웅서사에서부터 확인된다. 예컨대, 신화적 영웅서사인 <단군신화>에서 환웅(桓雄)이 위신(爲神)의 이념으로 설립된 아버지 환인(桓因)의 질서에 동의하지 않고 새롭게 개창하고자 하는 질서의 이념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민본주의다.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고자 하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민중성에 입각해 있다. 상하의 계층질서 속에서 축적되어 있는 계층하부 인간들의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치유해 주고자 하는 의지가 바로 영웅의 민중 지향적인 이념이 되는 것이다.

기실, 영웅일대기를 구조적으로 완성시킨 <주몽신화> 이후로 전개되어온 신화적인 영웅서사에서 민중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지향하는 이념이 영웅의 익숙한 정체성으로 존재해 왔던 것은 아니다. 위민의 민중 지향적 이념은 신화적인 영웅서사에서 쉽게 찾기 어렵다. 새로운 질서를 창안한 집단이 민중 위에 군림할 정치적 권력을 정당화 하고자 하는 목적성 이외에 위민의 이념적 의지가 뚜렷이 확인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신화적 영웅서사를 현대적으로 재생산한 일련의 미디어소설들에서는 이러한 민중의 집단 트라우마를 대신해서 치유해주고자 하는 이념적 지향성이 확인되는 경우들이 있다. 원형서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향성이다. 예컨대, 드라마 <주몽>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드라마 <주몽>은 아버지 해모수가 기존 세계의 질서를 만든 주인인 남의 부모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입은 부모 트라우마에 민중의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얹었다. 고조선 멸망 후, 유민(流民)으로 떠돌면서 중국 한(漢) 나라의 지배아래 핍박을 받고 있던 민중들의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한사군과의 투쟁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이념적 지향성을 해모수를 통해 그렸다.

여기서 해모수는 한나라가 지배하는 동북아의 질서를 부분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자 하는 신화적인 영웅이되, 자기 민족이 처한 피지배의 집단적인 상처를 치유하고 자율을 회복하고자 하는 민중적인 영웅으로 확대된다. 남의 민족에 의한 내 민족의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우리의 민중 영웅이다. 따라서 주몽이 남의 부모에 의한 내 부모의 트라우마를 자신의 신화적 영웅일생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고구려 창업의 행로에는 내 민족의 집단 트라우마의 치유 문제가 맞물리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겠다. 드라마 <주몽>과 같은 미디어소설들은 신화적 영웅서사의 원형에서 주조를 이루고 있지 않았던 민중적 집단 트라우마의 문제를 새롭게 창안해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리터러시(literacy)의 차원에서만 보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사를 문자에 의한 축자적(逐字的)인 차원뿐만 아니라 향유에 의한 상황적인 차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범주를 확대해 놓고 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주몽신화>는 고구려의 멸망과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을 거치면서 건국신화적 향유의 맥락이 해체되었다가, 고려조에 와서 원(元) 나라의 침략이라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동명왕편>으로 개작됨으로써 민족적인 신화로 향유의 맥락이 재구성되었다. 중국과의 대치상황에서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밀리지 않는 파워를 자랑했던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민족 신화의 맥락으로 향유의 차원을 확대함으로써 민족적인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할 정신적 기준점을 마련코자 했던 것이다.

축자적인 서사의 차원에서 보면 여전히 <동명왕편>에도 민중적인 트라우마가 부재하지만, 향유 목적과 방식을 포함한 서사의 차원에서 보자면 민족적인 집단 트라우마 치유의 문제가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집단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방향으로 확장되어온 <주몽신화>의 재창작사(再創作史)가 드라마 <주몽>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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