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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비원의 죽음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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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비원의 죽음을 생각하며
  • 이환태 교수(목원대 영어영문학과)
  • 승인 2014.12.12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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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태의 문학 산책 | 고골리의 ‘외투’

쥐죽은 듯 하루하루 만족하며 사는 사람
경비원 유니폼 입었다고 모욕해도 되나
옷차림, 있는 자 거들먹거리는 외물일 뿐


한겨울이다. 인간에게 겨울은 그 어느 계절보다 혹독한 현실이다. 여름의 더위는 불편할 따름이다. 아무리 심해도 그것은 그냥 참을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무더위에 에어컨 없으면 못 살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 필수품은 아니다. 그것이 없다고 해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추위를 나기 위한 필수품이 없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러시아의 작가 고골리(Gogol)의 <외투>(The Overcoat)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에비치(Akaky Akakievich)는 어느 관청의 말단 공무원이다. 그는 멜빌(Melville)의 필경사 바틀비(Bartleby)처럼 사무실에서 문서의 사본을 만드는 일을 한다. 멜빌의 소설에 나오는 바틀비가 아무 이유도 없이 어느 날부터 서류 베끼기를 거부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오로지 문서를 베끼는 일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거기까지다. 어느 날 그의 윗사람이 그에게 새로운 문서 만드는 일을 시켜보지만, 그는 땀만 뻘뻘 흘릴 뿐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는 굳이 겨울이 아니더라도 잔뜩 움츠린 채 쥐 죽은 듯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권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돈마저 없지만, 누가 괴롭히지만 않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그런 사람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로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아가는 데 만족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우리네 서민의 초상화다.

그런 그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새 외투를 맞추면서다. 가난한 공무원의 적(敵)은 지독하게 추운 겨울이라 할 만큼 페테르부르크의 겨울은 춥다. 너무 낡아서 모기장 같이 되어버린, 그래서 외투라기보다는 발싸개로나 쓸 수밖에 없는 외투를 새것으로 장만하기 위해, 그는 끼니도 거르고 촛불도 켜지 않고 심지어는 구두가 닳을까봐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을 만큼 지독한 내핍 생활을 한다.

연봉 400루블인 그가 무려 80루블짜리 외투를 마련할 돈을 만들고 새 외투를 주문했을 때 그는 “마치 자기의 존재가 충실해지고, 결혼이라도 해서 어떤 다른 사람이 줄곧 옆에 붙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에게 새 외투는 그냥 추위를 막아주는 옷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자신감을 주고 위축된 어깨를 조금이나마 펴게 해주는 그 무엇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야 사시사철 그런 것을 외투처럼 두르고 살기에 그게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마저 무디어져 있겠지만, 이 말단 공무원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에게 그것은 생전 처음 맛보는 묘한 어떤 것이었다.

새로 지은 외투를 입고 출근하자 그를 못살게 굴던 사람들조차 대우가 사뭇 달라진다. 그 외투를 얻기 위해 그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은 그의 외투를 요모조모 구경한 후 그에게 한 턱 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전례 없이 그의 상관이 베푸는 파티에 초대를 받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만 강도를 만나 그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덜덜 떨며 하숙집에 돌아온 그는 결국 어느 고관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면 혹시 그것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가까스로 그를 찾아가는데, 그는 매우 거만한 사람이었다. 그 고관은 그만한 일로, 절차도 밟지 않고, 감히 자기와 같은 높은 사람을 직접 찾아왔다며 아카키를 심하게 꾸중한다. 호통이 어찌나 심하던지 그는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며 수위의 부축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곳을 나올 수 있었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페테르부르크의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편도선이 붓고 열이 올라 몸져눕더니, 사흘 만에 그만 숨지고 만다.

그 후 밤이면 페테르부르크에는 유령이 나타나 외투를 입은 사람에게서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마구 외투를 벗겨간다는 소문이 돈다. 자신이 혼쭐내어 내쫓은 아카키가 죽었다는 말에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그 고관도 어느 날 밤 유령을 만난다. 유령이 외투를 내놓으라고 말하자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의 외투를 벗어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친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더 이상 외투를 빼앗는 유령의 얘기가 들려오지 않는다.

외투는 그저 우리가 입는 옷만이 아니다. 그것은 부자를 거들먹거리게 하고 권력자를 기세등등하게 하는 것 같이 인간의 본성을 흐려놓는 외물(外物)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런 외물에 의지해서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벗겨놓으면 그 실상은 아주 보잘 것 없지만, 그걸 두르고 있을 땐 당당하기가 이를 데 없어 더 큰 부와 권력으로 누르기 전에는 끄떡도 않는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서울의 어느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주민의 모욕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했다고 한다. 경비원임을 구별하기 위해 유니폼을 입혔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그의 인간됨이 그렇게 모욕하고 괴롭혀도 될 만큼 하찮은 존재였을까? 그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어엿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그의 초라함이 실은 그들이 입힌 그 빌어먹을 유니폼 때문인 것처럼, 그들의 그 거만한 모욕도 실은 하나의 외투에 의지하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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