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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사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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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사회는 없다
  • 남 청( '철학 무게를 벗다' 저자, 전 배재대 심리철학
  • 승인 2014.11.28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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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청의 인문학산책 | 선진사회를 꿈꾸며

‘우리나라는 왜 그래?’ 자학·개탄 넘쳐
불완전한 인간, 사회 모순·결핍은 당연
상식·대화·타협 민주주의 3원칙 지켜야


지금부터 200여 년 전 18세기 말, 영국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플레처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을 단장으로 멀리 떨어진 섬에 가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고자 했다. 그들은 몇 년 동안 이를 위해 장소도 물색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가족을 데리고 남태평양 피트컨 섬에 가서 원주민들과 더불어 작은 공동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불과 9년 뒤 이 공동사회는 실패작으로 끝나고 말았다. 일반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이곳에서도 발생했다. 그동안 12건의 살인, 수없이 많은 폭력 사건, 성도덕의 문란, 알코올 중독자 등이 발생했다. 그 가운데 한 건의 자살이 있었는데 장본인은 그 공동사회 지도자였던 플레처 크리스천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세상 어디에도 이상적인 사회는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쓴다”는 구호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공산주의사회를 꿈꿨지만 결국 구소련과 동구권사회의 붕괴로 100년도 못돼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이상적인 사회만이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상적인 인간도 없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는데 이 남자는 항상 ‘완벽한 여자’를 만나 완벽하게 행복한 삶을 살기를 꿈꾸었다. 그는 마을에서 그런 여자를 부지런히 찾아봤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그는 완벽한 여자를 찾기 위해 그 마을을 떠났다.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그런 여자가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마을을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루는 그의 친구가 반백의 머리에 허름한 옷을 입고 혼자 힘없이 그 마을로 돌아오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그가 오래전에 완벽한 여자를 찾기 위해 그 마을을 떠난 친구임이 틀림없었다.

“여보게, 자네 오래 전에 이 마을을 떠난 아무개가 아닌가?” “그렇다네. 내가 바로 아무개지.” “그런데 어째서 자네 혼자 돌아오는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완벽한 여자를 만나지 못했는가?” “왜, 만났지.” “그런데 왜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는가?” 그때 그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도 나처럼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더구먼.”

그렇다. 그는 인간이 모두 불완전한 존재인 것을, 그리고 자기 자신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모든 인간이 허물과 결점 투성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런 인간들이 모인 사회공동체 역시 모순과 갈등과 결핍 투성인 불완전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사회가 선진사회가 될 것을 꿈꾸고 있다. 정치도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고 경제도 국민 1인당 GDP가 3만 불에 육박했으니 이제 우리도 선진 국가, 선진사회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선진국가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선진국이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가 선진 국가, 선진사회를 말할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인간은 없다는 것을 먼저 전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너무 혼란스럽고 우리를 분노케 하는 일들과 자주 마주친다. 그때 “왜 우리나라는 이런가?” “우리사회는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가?” “정치인들은, 기업인들은 왜 저 모양인가?”라고 불만을 토하며 우리 스스로를 자학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지난 20일 하루에도 서울 도심 85군데서 수만 명의 성난 군중들이 머리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험하고 섬직한 말들로 도배한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요란한 구호와 함께 거리를 점령했다. 선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며 “우리는 아직 멀었다”라고 개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으로 인해 그리 절망할 일은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온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이다. 6·25 전쟁 때 영국 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기사를 써 우리를 분노케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기자는 한국이 해방 후 6·25 전쟁까지 민주주의 역사가 5년 밖에 되지 않았음을 간과한 잘못을 범했다. 영국은 짧게는 1688년 명예혁명부터, 멀리는 1215년 마그나카르타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혼란했던 우리사회를 보고 그런 모욕적인 기사를 썼다는 것은 기자의 양식을 의심하기에 족한 일이다.

우리는 서구사회와 같은 시민사회를 경험하지 못했다. 조선봉건왕조가 끝이 나고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36년간의 일본제국의 식민정치였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도 국민도 민주주의에 대한 식견도 경험도 갖지 못했다. 그러니 자유를 추구하고 실현해나가는 데 있어 혼란과 시행착오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100년 후, 200년 후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서구의 어떤 나라보다도 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한다. 이런 선진사회를 꿈꾸며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유민주주의 원칙 한 가지만을 확인하고자 한다.

흔히 민주주의는 3C가 통용되는 사회라고 한다. Common Sense(상식) Communication(대화) Compromise(타협)가 그것이다.

우리사회는 우격다짐이 많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건 아닌데 자기 생각이 옳다고 우기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 말이 옳다고 억지주장을 한다. 자기가 차선을 위반하고 신호를 위반해서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서는 먼저 화부터 내고 언성을 높인다.

바람직한 민주주의 사회란 먼저 건전한 상식을 기반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감성적 기질을 가진 터라 화를 잘 낸다. 대화할 때도 얼굴을 붉히고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오해도 풀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 데도 말이다.

그러나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서로 타협을 해야 한다. 타협이라는 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꼭 필요한 말이고 좋은 의미의 말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아주 부정적인 말처럼 들린다. 상대방과 타협을 하면 마치 좋지 않은 뒷거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한국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나타났던 정치 현장에서의 부정적인 행태들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들이 타협을 할 때 은밀한 장소에서, 그리고 타협의 대가로 검은 돈이 오고간 것이 국민들에게 ‘타협은 좋지 않은 뒷거래’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밀실에서의 수상쩍은 타협은 우리의 현실 정치에서도 많이 사라졌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해방 후 지난 70여 년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시행착오적인 경험을 어떻게 지혜롭게 발전시켜 나가는가에 있다. 미래 이루어져야 할 꿈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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