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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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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이 우선이다
  • 송영웅 팀장(한국일보 신사업기획TF)
  • 승인 2016.08.16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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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웅의 경제포커스 | FTA로 잃는 것들

한국 52개국과 자유무역협정 ‘세계 3위’
전자·자동차 수출 득, 농·축산업만 희생
50~100년 내다 본 중장기 계획 세워야


박근혜 정부가 최근 들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3월 서울에서 열린 통상장관회담에서 캐나다와 FTA 타결로 포문을 연 정부는 다음 달인 4월 호주와 한·호주 FTA에 정식 서명했다.

이달 들어 정부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2004년 아세안+3 경제장관회의에서 민간공동연구 형태로 처음 시작돼 10년여를 끌어온 한·중 FTA를 지난 10일 전격 타결했다. 이후 일주일도 안 돼 한·뉴질랜드 FTA 체결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004년 4월 칠레와 처음 맺은 한·칠레 FTA 이후 10년 동안 총 14번의 FTA를 체결, 모두 52개국과 관세를 낮추는 자유무역협정을 맺게 됐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국가들의 GDP(국내총생산)를 모두 합치면 세계 전체 국가 GDP의 73.45%에 달한다. 다시 말해 잇단 FTA 체결을 통해 우리나라와 자유무역 통상을 하는 세계 각국과의 경제영토가 그만큼 확대됐다는 것을 말한다. 이 규모는 칠레(85.1%), 페루(78.0%)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된다.

이밖에 정부는 현재 멕시코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등 6개국과 FTA 협상을 진행 중에 있고, 러시아 말레이시아 몽골 이스라엘 등 7개국과도 협상을 준비 중에 있어 향후 우리나라의 FTA 체결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각국과의 FTA 체결에는 반드시 명암이 생긴다.

특히 전자, 자동차 같은 공산품에서 기술적 우위에 있는 반면, 농·수·축산물 같은 1차 산업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FTA 체결로 인해 각 산업별 득실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금까지 체결한 14차례의 FTA 협상 타결에서 득을 보는 쪽은 전자나 자동차 같은 공산품을 수출하는 대기업들이다.

반면, 거의 예외 없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쪽은 힘없는 농민들이다. 좁은 땅에서 소작농 중심으로 이뤄지는 우리의 전통적인 농업 구조 때문이다.

정부는 FTA가 체결될 때마다 농·축산 농가들에 대한 각종 지원책을 내놓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몰려드는 수입 농산물에 치인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농촌은 점차 위축되고 황폐화하고 있다.

실제로 1994년 이후 국내에서 매년 서울 여의도 면적의 55배인 160㎢의 농지가 사라지고 있다. 516만 명에 달했던 농민 수도 지난 20년 동안 284만 명으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더구나 정부가 내년부터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대신 쌀시장을 개방키로 해 농민들의 타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문득 문득 ‘더 많은 공산품 수출을 위해 정부가 이처럼 FTA 체결에 앞장서 나서야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우려와 회의가 들기도 한다.

물론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당연한 발상일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지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수출 덕분이다.

하지만 수출 주도로 우리 국민들의 개인소득이 올라갔다고 해서 과연 삶의 질도 그만큼 향상됐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최첨단 스마트폰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있지만, 우리는 농약과 방부제가 잔득 뿌려진 수입 농산물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고 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다수 국민들이 아파트와 고층 빌딩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풀 향기와 흙 내음을 음미할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줄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다가 식량 자주권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잇단 FTA 체결로 공산품 수출을 늘리는 대신, 우리의 주식인 쌀과 채소 같은 먹거리들을 재배하는 농민과 농토가 계속 희생된다면 그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순 없다. 한때 쌀 수출국이었다가 정부가 쌀 산업을 포기하면서 지금은 쌀 수입국으로 전략한 필리핀의 전례도 있다. 농민과 농토는 없애기는 쉽지만 다시 살리려면 그 몇 배의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농·축산업에 대한 단발적인 지원이 아니라 50년, 100년 뒤의 경쟁력과 식량 주권까지 감안한 중장기 플랜을 세워야 한다. 필요하다면 FTA로 혜택을 보는 이익의 일부를 법적으로 환수해 농·축산업으로 돌려주는 분배 정책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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