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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감에 짓눌린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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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감에 짓눌린 10대
  • 세종포스트
  • 승인 2014.11.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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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영화 | ‘거인’

“고백합니다. 무책임한 아버지를 죽여주시고, 못난 어머니를 벌해주시고, 철없는 동생에게 살아갈 지혜를 주시고,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저를 가엽게 여겨주세요. 제 이야기가 들린다면 절 놓아주세요. 절 버려주세요. 제발.”

영재는 스스로 아버지와 동생이 있는 집에서 나와 보호시설인 그룹 홈에서 자랐다. 열일곱 살이 돼 이제 시설을 나가야 하나 무책임한 아버지의 집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신부가 되고 싶다며 모범생처럼 행동하지만, 남몰래 후원물품을 훔치고 거짓말로 친구를 배신하는 악함을 품었다. 이곳을 떠나기 싫어서 살아남기 위해 눈칫밥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절망의 한계는 끝이 없다.

누가 청춘을 아름답다 했나. 13일 개봉한 영화 <거인>(감독 김태용·제작 메이킹에이프린트)은 더 이상 떨어질 곳 없어 보이는 비극적인 10대 청춘의 단상이다. 숨 쉴 틈 없는 좁은 공간에서 열일곱 살 영재(최우식)는 발버둥 친다. 무능한 부모 대신 스스로 고아를 택한 그에게 10대는 아름답지 않다. 어딘가에 몸담고 있지만 안식할 곳은 없다. 어리기에 현실의 벽은 높고, 미처 성장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자신을 옭맨다.

2010년 개봉해 독립영화계를 흔들었던 <파수꾼>을 보는 듯하다. <거인>은 청춘영화, 혹은 성장영화의 범주에 묶이나 평범하지 않다. 방황하는 10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많았지만 <거인>만큼 자신에게 솔직하지는 못했다. 메가폰을 잡은 스물여덟의 김태용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벌거벗은 채 스크린 앞에 섰다. 직접 겪었던 불안과 흘렸던 눈물이 최우식이라는 배우를 통해 발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동력 삼아 20대를 살아왔지만 서른이 되기 전 영화를 통해 유년 시절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김 감독은 극단의 상황에 부닥친 자신을 상상하며 <거인>을 풀어냈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했다.

상처에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거짓이 낳은 거짓 속에 함몰되기보다 스스로 일어나, 트라우마를 깨길 종용한다. 김태용 감독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상처를 숨기려고만 한다. 숨긴 상처는 곪아서 다른 분노로 표출된다. 결국은 관계도, 살아가는 것도 힘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거인>은 10대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때를 통과한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격려다.

유쾌한 이미지가 강했던 배우 최우식은 <거인>을 통해 틀을 깼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말하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속으로 삼키는 영재의 무게감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10대, 그것도 삶의 무게감에 짓눌린 소년의 속내를 열연을 통해 풀어냈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거머쥔 올해의 배우상이 아깝지 않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는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거인>은 CJ E&M의 신인 감독 데뷔, 차기작 기획 개발 지원 프로그램인 버터플라이 프로젝트 세 번째 작품이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을 받았다. 러닝타임 108분. 12세 관람가.

<제휴기사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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