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
상태바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
  • 송영웅 팀장(한국일보 신사업기획TF)
  • 승인 2016.08.16 16: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영웅의 경제포커스 | 장점은 점점 사라지는데…

전기요금·난방비 올라 메리트 없어져
층간소음, 위·아랫집 간 다툼도 빈번
전세 값 폭등·신규 분양에 인파 ‘갸우뚱’


올해는 개인적으로 아파트에서 살게 된지 꼭 20년이 된 해다. 당시 새로 지은 아파트에 세를 들어 입주할 때 가졌던 기대감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신혼살림을 꾸린다는 설렘이 있었기에 기대가 더 컸지만, 여태 살아보지 못했던 고층 아파트에서 살게 된 것이 마치 꿈만 같았다.


아파트 생활은 특히 겨울에 진가를 발휘했다. 따뜻한 욕실에서 수도꼭지만 돌리면 온수가 나오는 아파트가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겨울에도 집안 전체가 따뜻해 단독주택에 살 때처럼 안방의 아랫목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여름에도 에어컨을 켜면 제 아무리 삼복더위가 몰려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어컨 하나로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피하곤 했다.


보안이 좋아진 것도 큰 장점이었다. 예전에 단독주택에 살 때는 1년에 한 두 번은 좀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집어가곤 했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도난을 당한 적은 거의 없다. 물론 이웃 간에 교류가 거의 없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보안이 철저하다는 점은 핵가족 시대에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 한 10년 전부터인가 아파트의 장점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기요금이 크게 오르자 우선 에어컨을 켜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여름철 주중에는 거의 켜질 않고, 가족이 다 모인 주말에만 시간을 정해 에어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 집이 최상층이어서 지열까지 높아 한여름에는 백화점이나 서점으로 가족이 에어컨 피서를 다니곤 한다.


몇 해 전부터인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난방비까지 매년 오르면서 겨울철에도 생활에 불편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월 난방비 논란은 벽보에서 시작됐다.


처음 필자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평수가 큰 옆단지에 비해 평수가 작은 우리 아파트 세대의 난방비가 더 나온다’는 불평을 담은 익명의 쪽지가 붙었다. 그러자 며칠 뒤에 ‘본 아파트는 난방 관련 시설이 노후해 열손실이 많아 상대적으로 난방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관리사무소의 해명성 벽보가 나붙었다. 관리사무소는 난방비를 줄이려면 전체 가구당 100만원에 육박하는 시설 교체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 이후 주민들은 난방비에 대한 불만을 계속했지만 대놓고 반발을 하진 못했다.


3년 전부터 필자 집도 한겨울에 낮에는 거실에만 난방을 하는 제한 난방을 시작했다. 그래서 일찍 퇴근하고 들어가는 날이면 아내가 모포를 뒤집어 쓴 채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을 종종 본다. 최근 몇 년 간 전기요금과 난방비가 크게 오르면서 예전에 아파트가 가졌던 장점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영화배우 김부선 씨가 난방비 비리를 폭로하는 사건이 터졌다. 정확히 알아보진 않았지만 필자 아파트 역시 난방비를 놓고 수많은 말들이 나돌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일부 주민은 난방비를 조작하는 얌체 세대를 적발해 내기 위해 관리사무소가 아파트 전 세대에 대한 계량기 전수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층간 소음도 문제다. 자주는 아니지만 윗집과 아랫집 간에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툼을 하는 소리도 간혹 들린다. 이런 탓인지 아내는 요즘 필자의 발걸음 소리가 크다는 지적을 부쩍 자주한다. 그래서 집에 가면 까치발을 하며 걸어야 할지 고민한다. 최근 들어선 식탁 의자에서도 가능한 소리 내지 않게 앉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 주말에 아파트에 있다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만의 공간이어야 할 집이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사무실에서, 주말이면 아파트에서 지내는 생활이 왠지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 갇혀 사는 신세 같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아파트 전세 값이 연일 폭등하고, 신규 아파트 분양에 사람들이 몰리는 걸 보면 고개를 기우뚱하게 한다.


중·장년 시절의 20년을 보낸 아파트.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작은 정원을 가꾸고, 흙을 밟으면 사는 ‘아파트 탈출’을 그려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