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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 앞에 고개 숙이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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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 앞에 고개 숙이는 용기
  • 강수돌 교수(고려대 경영학부)
  • 승인 2014.09.07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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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 사회 |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

가난하게 살지만 진정 부유한 삶의 철학 보여줘
‘쓰레기’ 만드는 허황된 소비나 거품 경제 경계
마리화나 합법화, 절실한 자에 적정량 합법 공급


호세 무히카 대통령! 언젠가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다. 일국의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궁에서 살지 않고 그저 평범한 농부처럼 시골의 자기 집에서 출퇴근하는 장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통령이 마치 말단 공무원처럼 자기 집에서 출퇴근하고, 시간 나는 대로 트랙터를 직접 몰기도 하는 농사꾼인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격월간 인문 교양 잡지인 <녹색평론> 7-8월호에 호세 무히카 대통령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2013년 10월에 독립 언론인 ‘알자지라’가 직접 호세 무히카 대통령을 찾아간 것이다.


기자가 묻는다. “최근 들어 당신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대통령으로 묘사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이 말한다. “아니, 진짜 가난한 이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지요. 나는 검소하게 생활할 뿐, 가난한 게 아닙니다. 짐을 가볍게 하고 그냥 소박하게 사는 거지요.”


그가 소박하게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갖기 위해서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죠. 자유란 ‘삶을 누리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나는 가난하지 않아요.”


기자가 묻는다. “봉급의 90%를 기부하신다고요?” 대통령이 답한다. “내 아내는 상원의원이고 자기 정당에 기부를 꽤 하지만 그래도 아내의 봉급으로 우리 둘은 충분히 먹고살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내가 생활해온 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는 거죠. 나는 내가 속한 정치 그룹에 기부하고, 또 미혼모를 위한 주택사업 같은 프로젝트들에 기부합니다. 내게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의무입니다.”


기자 : “마리화나 합법화는 어떤 이유로 추진하신 거죠?”


대통령 : “그건 마약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실험이죠. 지난 100년간 경찰 단속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급증했어요. 마약은 만연하고 폭력은 난무하죠. 그래서 은밀한 거래를 공개 장소로 끌어내려는 시도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구매하고 사용하게 하는 건 아닙니다. 적절한 규제가 목적이죠. 약국을 통해 개별적으로 복용량을 제공하고, 그 이상 필요한 이들은 보건 차원에서 다른 방식의 치료를 하게 도울 생각입니다.”


기자 : “당신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러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공통점이 있나요?”


대통령 : “인간애입니다. 교황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입니다. 그는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애에 대해서, 헌신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 나는 교황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기자 : “당신은 현대인의 억제되지 않은 소비중독이 문제라고 하셨는데, 소비주의 문화 없이 개발도상국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 : “나는 소비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쓰레기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식품을 생산해야 하고 거처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집을 짓고 학교가 없는 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물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오늘날의 세계 인구가 평균적인 미국인처럼 소비하기를 갈망한다면 지구가 세 개는 필요할 것입니다. 파멸은 필연적입니다.”


기자 : “당신은 라틴아메리카를 대변하는 목소리도 많이 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대통령 : “내 목표는 우루과이에서 불공정한 사회현실을 다소나마 바로잡아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적 사고방식을 남겨두고 떠나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공익이 우선적인 것이 되도록 싸우는 것입니다. 설사 내가 죽어도 다른 사람들이 계속 해나간다면 내 삶은 연장되는 것이죠.”


기자 : “대통령에서 물러나면 무엇을 할 계획이신가요?”


대통령 : “나는 농업기술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방치되었던 내 밭에 꽃과 채소를 재배해야겠지요.”


기자 : “대개의 정치 지도자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일단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리를 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데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대통령 : “나는 공화주의자입니다. 공화국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원리로 움직이는 체제입니다. 대통령은 왕이 아닙니다. 신은 더욱 아니죠. 대통령은 공복일 뿐입니다.”
기자 : “당신은 대통령일 뿐만 아니라 철학자이고 시인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행복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 :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에 있는 존재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모습대로 살되, 자기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내 자유도 지키는 게 중요하죠.”


비교적 긴 인터뷰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쓸 데 없는 내용이 없다. 그것은 진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쓰레기’를 만드는 허황된 소비나 거품 경제가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식품을 생산해야 하고 거처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집을 짓고 학교가 없는 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 물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부분은, 투기를 조장하고 이윤을 위해 사람과 자연의 파괴도 꺼리지 않는 한국의 정치가들, 경제인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무히카 대통령의 소신은 ‘높은’ 분들에게만 귀감인 것은 아니다. 일반 시민 모두가 명심해야 할 내용들이다. “진짜 가난한 이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지요. 나는 검소하게 살 뿐, 가난한 게 아닙니다.” 겉으로 소박하게 살아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란 별칭까지 얻었지만, 진정 부유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철학이다. 그것은 “자기 내면의 존재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그의 인생관과도 통한다.


그가 존경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도 다녀갔다. “타인의 고통 앞에 중립이란 없다”는 말이 귓전에 맴돈다. 그렇다. 무히카 대통령이 마리화나 합법화를 통해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적정량을 합법 공급하겠다고 한 것처럼, 세월호 사태로 304명의 생명만이 아니라 나라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상실한 우리 사회에도 ‘공감의 정치’ 나아가 ‘공공의 정치’가 필요하다. 지금의 정치·경제적 위기, 사회·문화적 위기를 돌파할 유일한 길은 자발적으로 소박한 삶을 살되 공공의 일꾼으로 일하는 무히카 대통령처럼, 또 타인의 고통에 적극 공감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삶의 진실’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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