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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임의 정점’ 유병언, 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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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임의 정점’ 유병언, 천만에…
  • 박권일
  • 승인 2014.08.11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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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소수의견 | 음모론 시대의 책임 묻기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음모론의 매력

정작 본질은 뒤로 밀리고 비본질만 횡행

세월호 참사, 최종 책임자는 박 대통령

경찰은 6월 12일 순천에서 발견된 남성 사체가 유병언 씨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정국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필 재보궐 선거 시즌이다.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미심쩍어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검경이 유병언을 한 달 넘게 찾아 헤맸는데 이제와 시체로 발견됐다 하니 그럴 만도 했다. 당장 음모론이 튀어나왔다. 권력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조작이라는 것이다. 시체가 유병언이 아닌데 유병언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음모론이 가장 많았다. 유병언을 국정원 요원이 살해했을 거라 추측하는 이들도 있었다.

음모론은 개혁성향 시민들 사이에서만 나온 게 아니었다. 극우인종주의 커뮤니티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도 음모론이 등장했다. 일베의 논리는 이랬다. 재보선 앞두고 광주 광산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후보 때리기가 막 효과를 발휘하려는 찰라, 그리고 곡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여론조사 1위를 하는 놀라운 선전을 보여준 순간 유병언 사체 발견이라는 초대형 뉴스가 발표되었다. 정권과 여당에 유리한 사안들이 전부 묻히고 말았다. 이것은 ‘전라도 경찰’인 순천 경찰서의 박근혜 정권 물 먹이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약도 없는 전라도 혐오증이 만들어낸 음모론이라 하겠다.

정확히 말해 두 개의 음모론은 초점이 다르다. 전자의 음모론이 유병언의 죽음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후자의 음모론은 발표 시기에 방점이 있다. 한편, 공통점도 있다. 음모의 주체들, 그러니까 정권, 여당, 고위관료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체가 유병언이 아닌데 유병언이라고 조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물적 증거가 남아있기 때문에 언제든 탄로 날 수 있다. 리스크가 너무 큰 도박이다. 만약 정권이 유병언을 죽였다면 세월호 관련 정권비판 여론이 청와대로 집중되기 시작했을 때 유병언 사망 사실을 터뜨렸어야 합리적이다. 일베의 음모론대로 순천경찰서장이 자신의 경력 전부를 걸고 선거 국면전환을 위해 정권 물 먹이기에 나섰을 가능성은 어떨까.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단번에 직위해제 되었지만 야당에게서 어떤 ‘약속’을 얻었다는 증거나 정황은 없다. 이런 불명예스런 직위해제를 보상해줄 반대급부가 있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음모론은 세계의 비밀을 매끈하게 설명해주기에 매력적이다. 논리에 부합하는 사실만 취하고 아닌 것을 버리기 때문에 그럴듯한 음모론일수록 우연성과 무의미성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실재(實在)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밀폭로라 할 위키리크스 문서들을 보면, 세계의 질서가 ‘빅 브라더’나 ‘매트릭스’ 같은 빈틈없이 억압적인 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권력들의 비이성적 충동에 의해 유지됨을 알 수 있다. 프리메이슨이나 성당기사단 같은 어둠의 엘리트 집단도 없었다. 모여앉아 다른 나라 외교관 ‘뒷담화’나 까는 한심한 관료들이 있을 뿐이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엘리트들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상한 열정에 이끌려 멍청한 짓을 반복했다. 위키리크스가 보여준 건 세계의 소름끼치는 비밀이라기보다는 그런 비밀 같은 건 없다는 건조한 사실이었다. 줄리언 어샌지는 권력자들의 기만을 폭로하겠다는 단순한 열정으로 일을 벌였지만 그가 드러낸 것은 체제의 기만성이라기보다 차라리 체제의 허약성이었다.

음모론에 휘둘릴수록 세월호 참사의 책임 묻기는 뒷전이 된다.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로 한국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본질이다. 최종심급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직접적 책임은 따로 물어야 하고 그 책임 묻기가 집요하고 적확할수록 최종심급의 책임 묻기(기성세대 전체를 포함하는)도 더 철저히 이루어질 수 있다. 직접적 책임 묻기는 크게 두 덩이로 나뉜다. 하나가 사고 발생과 관련된 책임이고, 다른 하나가 수습과정에서 사고 피해와 유족들의 고통을 더 가중시킨 책임이다. 전자에는 인허가에 관련된 정부부처의 문제도 들어간다. 후자의 핵심에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의 ‘최종지휘 책임’이 놓여있다.

정권-여당, 종편방송-극우매체가 가장 원하는 그림은 유병언 일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유가족의 요구를 여론에서 분리해 철저히 개인화시키는 것이다. 유가족이 요구하지도 않은 특례입학 운운을 여당이 흘리고 여론조작에 이용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어느 매체는 “세월호 책임의 정점 유병언”이란 표현을 썼다. 천만에. 유병언은 책임의 일부다. ‘책임의 정점’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정권에 관심을 더욱 집중해야하는 이유다.

박권일 시사평론가 | ‘88만원 세대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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