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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 나라 망치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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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 나라 망치는 지름길
  • 김학용 주필
  • 승인 2014.07.22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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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칼럼 | 1인자만의 ‘즐거움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일보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일보

김무성대표 출범, ‘박대통령의 즐거움’ 위협

독선은 ‘하수 1인자들’의 방법, 고수라면?

제대로 임금 노릇하는 건 힘들다. 어천만사가 걱정거리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너무 안 와도 근심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물가가 너무 오를까 대형 사고라도 터질까 늘 노심초사다. 그러나 군주와 대통령에겐 남들이 갖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다. <논어>에 공자(孔子)가 노나라 정공(定公)에게 말한 그 즐거움이다. "사람들의 말에 ‘내가 임금이 되어 다른 즐거움은 없고, 다만 내가 말을 하면 아무도 어기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누구보다 ‘1인자의 즐거움’을 누려왔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의 말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인사 참사’가 되풀이되는 걸 보면 대통령의 말이라면 지당하다는 ‘지당대신’들만 그를 에워싸고 있다. 본래 찬성보다 반대가 소임인 야당의 시비는 늘 있어왔지만 목소리가 크지 못했다.

이젠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을까?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비박(非朴)인 김무성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여당 내의 야당이 탄생한 셈이다. 대통령에겐 더 신경 쓰이는 ‘진짜 야당’이 될 수 있다.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고 했다. 당청을 수평적 관계로 바꾸겠다고도 했다. 당대표 선거 기간 중에는 "박 대통령에게 독선의 기미가 나타났다"는 말까지 했다.

김 대표가 대통령의 독선을 바로 잡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벌써부터 양측의 신경전이 보인다. 장관 인사청문회를 거친 김명수 정성근 정종섭 씨 등 3명의 낙마 여부가 당장의 시험대다. 야권에서 3명 모두에 대해 반대하고 있고, 여당도 2명은 버려야 할 카드로 여긴다.

결국 한 명은 교체하고 다른 한 명은 자진사퇴했으나 청와대는 3명 전원 임명을 강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여당의 협조가 없다면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 대통령은 김 대표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김 대표가 제 역할을 한다면 대통령은 이제 ‘1인자의 즐거움’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항변할 것이다. "내 생각이 가장 정확한데 도대체 누구의 말을 따르라는 것이냐?"고 반박할지 모른다. "야당의 반대도 시민단체의 거부도 정치적 목적일 뿐인데 내가 어떻게 그들의 반대를 수용할 수 있는가?" "김무성이 우리당 대표가 되었지만 대권을 노리는 사람이니 그의 말도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반론은 공자도 염두에 뒀었다. 그는 "임금의 말(생각)이 선(善)해서 아무도 어기지 않는다면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문제는 임금의 말이 선하지 못할 경우다. 공자는 "임금의 말이 불선(不善)한 데도 아무도 어기지 않는다면 한 마디 말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독선’의 위험성에 대한 공자의 경고였다.

‘(군주가) 한 마디 말로써 나라를 진흥(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정공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었다. 공자의 후학들은 "임금의 말을 아무도 어기지 않는다면 아첨하고 알랑거리는 사람들만 찾아온다. 이 때문에 나라가 갑자기 흥하거나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망의 근원은 여기에서 갈라지게 된다"고 해설을 붙였다.

문제가 된 장관후보자 3명을 다 임명하든 안 하든 결국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결론이 날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국가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이 공자 시대와 다른 것은 대통령의 선택이 국가의 미래보다 자기 정권의 흥망에 더 빨리, 즉각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소통을 거부하고 끝내 자기 고집대로만 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각종 선거에서 여당이 패하면서 결국 정권을 내주게 돼 있다. 집권 기간에도 대통령 지지율이 낮으면 의도하는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나라를 망치고 정권을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이렇다 할 치적도 없이 물러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면 독선에 빠지는 이유가 있다. 1인자에게 타협은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타협이 자신의 권위를 손상시킨다는 생각도 한다. 반대의 의견을 계속 수용하다간 나라를 끌고 가기 어렵다는 걱정도 들 것이다. 그러나 원초적인 이유는 ‘누가 감히 나에게 덤비느냐?’는 생각이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좋아할 지도자는 없다. 자기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걸 좋아하고 반대하는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을 힘을 가진 사람이 그 조직의 1인자다. 그 지위를 유지하는 한 그는 ‘1인자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한다.

능력이 있으면 1인자가 될 수 있고, 간혹 운이 좋아도 그런 자리에 갈 수 있다. 실질적인 1인자라면 ‘독선’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독선은 조직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망치는 지름길이다. 독선은 ‘하수(下手) 1인자들’의 방법일 뿐이다. 고수(高手)라면 자기보다 남을 내세워 자신의 뜻을 이룬다. 이야말로 ‘진정한 1인자’요 ‘진정한 즐거움’ 아닌가?

김정은이 뜨면 늙은 간부들이 수첩을 들고 따라 다닌다. 1인자의 즐거움이다. ‘아니오’는커녕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해도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회의는 이와 얼마나 다른가? 고금을 막론하고 ‘1인자의 즐거움’은 1인자 스스로 정치 수준의 저급성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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