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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서막, 코리안 슈퍼 히어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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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서막, 코리안 슈퍼 히어로 탄생
  • 권도경(세명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8.06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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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기술 랩 | 한국고전 영웅서사 원형의 재생산

‘뿌리 깊은 나무’ ‘각시탈’ ‘최종병기 활’ 등 흥행

할리우드 성공 방식 수용, 탈경계적 상상력 기반

단순한 모방·혼용의 차원에서 논의돼서는 안 돼

권도경 교수
권도경 교수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는 슈퍼 히어로들이 넘쳐난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나타나서 지구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초인적인 힘과 무공을 지녔으며, 일당백으로 악당을 물리치고 웬만한 살상무기쯤은 가뿐하게 제압한다. 좌충우돌 하다가 결국에는 위기로부터 세계를 구해내는 캐릭터다. 파란색 쫄쫄이 슈트를 입고 애교머리를 살짝 내린 채 하늘을 나는,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슈퍼맨의 포지티브한 감수성은 오히려 고전적이다. 박쥐 두건의 배트맨과 빌딩숲을 맘대로 헤치고 기어 다니는 스파이더맨은 슈퍼맨의 긍정적인 외면의 내부에 숨어있는 다크 사이드와 인간적 고뇌를 슈퍼 히어로의 양면적 감수성으로 끄집어냈다. 바이오 생체실험의 돌연변이로 태어나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어둠의 세력과 떼로 대결하는 액스맨을 거쳐 최근에는 기존 슈퍼 히어로들이 어벤져스라는 슈퍼 히어로 연합군까지 구성했다.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들이 전 세계를 열광시키며 캐릭터의 변형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은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가 열광적으로 소비되는 대표적인 시장 중 하나다. 물론 슈퍼 히어로물이 한국에서 창작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애니메이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는 토종 슈퍼 히어로의 대표작이고, <라이파이>는 무국적의 미국식 슈퍼 히어로의 대표작이다. 토종 슈퍼 히어로물은 세계의 위기를 한국 국적의 영웅이 구해내지만 미국식 슈퍼 히어로물은 국적을 알 수 없는 영웅이 악당에 맞서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 전 인류의 평화를 미국이 지킨다는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팍스코리아나(Pax Koreana)로 대체된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한국에서 창작되었을 뿐 탈 국가적이다. 전자가 슈퍼맨의 망토나 배트맨의 복면에 비견되는 태권도·한복 등 한국적인 문화원형을 상징적인 지표로 내세우고 있는 것과 달리, 후자는 미국인에 의해 세계적으로 소비되던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의 제작진과 향유지역이 한국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또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물의 기존 문법을 특별히 서사적으로 발전시킨 면모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나마도 후자는 코리안 슈퍼 히어로물의 전성기인 60~80년대를 넘어가면 명맥이 뚝 끊긴다.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자체 내적인 전승사 속에서 변용과 해체, 그리고 재구성을 반복하면서 시대를 거듭해도 향유 층의 구미에 맞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딴 판이다.

코리안 슈퍼히어로 ‘각시탈’의 흥행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의 성공방식을 수용해 내면화 한 위에서 이뤄졌다. ⓒKBS
코리안 슈퍼히어로 ‘각시탈’의 흥행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의 성공방식을 수용해 내면화 한 위에서 이뤄졌다. ⓒKBS

반면, 토종 슈퍼 히어로는 2000년대에도 명맥이 이어졌다.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나 드라마 <쾌도 홍길동>이 대표적이다. 애초에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애니메이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이 시대에 맞는 실사화를 목표로 만들어졌고 남녀주인공의 이름도 그대로 마루치와 아라치다. 후자는 고소설 <홍길동>을 원작으로 한 고우영의 만화 드라마다. 뿐만 아니라 고소설 <전우치>는 영화 <전우치>와 드라마 <전우치>로 최근까지 잇달아 미디어문학화 됐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이들 토종 슈퍼 히어로물의 흥행 성적은 높은 편이 아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각종 영화제 상을 받았지만 국내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고, 드라마 <쾌도 홍길동>이나 드라마 <전우치>은 10%대 시청률에 머물러 소위 국민드라마 반열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몇 편의 토종 슈퍼 히어로물이 드라마 시청자 층을 후끈 달궜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각시탈> 그리고 영화 <최종병기 활>이다. 이들 미디어문학들 속에서 성공적으로 구현된 토종 슈퍼 히어로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모·형제 트라우마의 극복과 민중과의 집단성 구축 과정에서부터 코리안 슈퍼 히어로물의 서사적 정체성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코리안 슈퍼 히어로물의 서사코드적 정체성은 부모·형제 트라우마가 민중적인 집단 트라우마로 확산되어 치유되어가는 한국고전 영웅서사 원형에 기반 한 것이다.

한 가지 지적해 둘 점은 이러한 한국적 서사 코드(code)에 대한 탐구가 국수주의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코리안 슈퍼히어로 각시탈의 성립은 제작진이 밝히고 있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그 흥행성을 인정받아온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의 성공방식을 수용해 내면화 한 위에서 이뤄졌다. 민족과 국가, 지리적 경계를 초월해 첨단이거나 혹은 흥행거리라고 생각되는 문화의 캐릭터나 내러티브, 소재나 미장센 등을 수용하는 이른바 탈경계적(脫境界的) 상상력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탈경계적 상상력이 단순한 모방이나 혼용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한단고기> 식의 무조건적인 K-제국주의적인 관점만큼이나 단순한 비빔밥성 차원의 하이브리드성 논의도 위험하다.

기준점이 없는 국수주의나 탈경계적 관점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탈경계적 상상력의 결과물로 이전 시대에 출현했던 할리우드식 한국 슈퍼히어로물은 진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아동 전용이라는 폄하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반면 최근의 코리안 슈퍼히어로물들은 할리우드적 감수성에 길들여져 있는 21세기 한국인에게 조차 쿨(cool)할 정도로 세계화 됐다. 향유층이 한국적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코리안 슈퍼히어로물들의 서사적인 형질(形質)을 분석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 언어문학에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은 촬영법, 영상이미지, 상업자본 등을 제외한 서사적인 형질의 문제가 된다. 아기장수전설이나 영웅일대기와 같은 한국적인 서사코드(narrative code)는 탈경계적 상상력을 세계적이되 동시에 한국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서사적인 프리즘이 될 수 있다.

**다음 회차에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과 다른 한국슈퍼히어로물의 차별성이 기반 해 있는 한국고전영웅서사원형의 특질(1)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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