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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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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들
  • 가기천(수필가, 전 서산부시장)
  • 승인 2014.05.0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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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에 읽은 소설 ‘꺼삐딴 리’

전관용의 소설 <꺼삐딴 리>에서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강점기 제국대학 의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의사다. 조국이나 동포,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주로 권력과 재력을 가진 유력자를 골라 상대하며 모범적인 ‘황국신민’이 된다.

해방 후 북쪽에 소련군이 진주하자 민족과 조국을 배반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힌다. 감방 안에서 주운 러시아어 회화 책으로 공부를 하고, 감옥에 번진 전염병을 치료하면서 인정을 받는다. 소련군 장교의 얼굴에 있는 혹을 수술해 주고는 기어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꺼삐딴 리’라는 이름은 그 소련군 장교가 붙여줬다. 아들은 소련으로 유학을 보냈다. 이어 전쟁이 터지자 월남하여 서울에서 병원을 열어 크게 키웠다. 미국으로 유학 간 딸이 그곳에서 결혼을 하자 이번에는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문화재를 선물하며 친분을 쌓은 미국대사관원과 접촉해 미 국무성 초청케이스로 떠날 준비를 한다. 격동의 시대를 능란한 변신술로 양지만 찾으며 산 기회주의자의 삶을 그림 소설이다.

역사에서도 소신과 지조를 멀리하고 시류를 좇아 자신의 영달만을 챙긴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선거철만 되면 ‘꺼비딴 리’와 같은 처세술을 발휘하는 입후보자가 많다. 오로지 공천과 당선가능성을 바라보며 기회를 엿보고 줄타기하는 사람들이다. 그럴듯한 명분과 이유를 들어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며 그때그때의 상황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변신을 꾀하는 사람들이다

후보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선거 때만 되면 난처한 입장에 처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타의에 의해 ‘꺼삐딴 리’가 되도록 요구받기 때문이다.

딱히 특정 후보를 도와준다고 나설 수도 없고, 막상 한편에 기울면 경쟁상대로부터 원망을 듣기 십상이다. 그렇다보니 차라리 구실을 만들어 외지에 가 있거나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또한 나중에 섭섭하다는 말을 듣게 되니 선거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한다.

특히 후보자, 지지자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작은 지역에서는 선거가 많은 사람들의 처신과 언행을 제약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본의든 그렇지 않든 내편, 네 편으로 갈리게 되고, 때로는 오해를 받고 내내 불편한 관계를 털어내지 못한다.

더욱 딱한 것은 당선자와 경쟁했던 상대 후보를 도왔던 것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다. 자기 공을 내세우려는 사람은 충성심이라도 보여주려는 듯 공연히 평소 껄끄러운 사람을 상대방 편이라고 고자질해 당선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해명이라도 할 텐데 그런 줄은 깜깜히 모른 채 경원시 되거나 서먹서먹한 관계로 지내기 일쑤다.

공직사회에서도 어느 편으로 붙는 것이 유리할지를 놓고 주판알을 튕겨가며 줄을 서는 행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공직자가 본분을 망각하고 선거판에 기웃거린다면 분명 잘못된 일이다. 단체장이 되어 자신에게 줄을 선 공무원을 편애하거나 이익을 주는 당선자가 있다면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이다. 자신을 돕지 않았다 하여 불이익을 주고 조직을 흐트러뜨리는 일은 가장 경계하고 삼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대전의 한 구청장이 선거에 당선되고 ‘살생부’를 접했다. 상대후보를 도운 공무원 명단을 누군가 가져온 것이다. 그 구청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야단을 쳐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일단 명단을 보게 되면 사람인 이상 뇌리에 박히게 되고 결국 알게 모르게 인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공복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한 번쯤 되새겨야 할 일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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