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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 가르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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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 가르치는 학교
  • 임연희 기자
  • 승인 2014.05.02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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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창 | 학교서열화와 1등 지상주의 폐해

최근 고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한 학부모로부터 푸념과 한탄을 들었다. 요약하자면 고3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한 교사가 최상위권 몇 학생을 불러 각 교과 담당교사에게 찾아가면 시험문제를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중 한 학생이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며 반발했고 결국 이 소문이 학교로 퍼지고 있다는 얘기다.

교사와 학생 사이 대화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어느 학교에서 벌어진 일인지, 대상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취재가 가능하다. 학생과 학부모 몇 사람 만나보면 소문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구나 최상위권 학생들의 내신등급을 높이려는 학교 측의 조작의도가 사실이라면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SKY’에 몇 명 보내느냐로 학교를 서열화하는 폐해가 학교현장에서 상위권 학생들의 내신관리를 위해 시험문제까지 가르쳐주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나타나고 있다.
‘SKY’에 몇 명 보내느냐로 학교를 서열화하는 폐해가 학교현장에서 상위권 학생들의 내신관리를 위해 시험문제까지 가르쳐주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나타나고 있다.

시험문제 유출 시도 사실일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취재하지 않았다. 아니, 취재할 수가 없었다. 중간고사를 며칠 앞둔 학생들이 겪을 혼란이 우려스러워서다. 인생의 큰 기로인 대학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충격 받을 게 먼저 떠올랐다. 또 지난 3년간 대학입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학생들이 사실여부를 떠나 학교와 교사에 대해 실망하고 허탈해 할까봐 걱정스러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썩었다"는 우리교육의 밑바닥을 보게 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었다. 아무리 교육이 무너졌다 해도 내신을 높여주기 위해 교사가 학생에게 시험문제까지 가르쳐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다. 학생부 위주 전형이 늘어남에 따라 최상위권 학생이 각 교과 내신등급을 잘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모르는 문제를 교과 교사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와전됐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매년 대학입시가 끝나면 나오는 서울대 몇 명 보냈는지에 대한 순위표를 보노라면 우리교육은 여전히 ‘서울대 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러니 교사도, 학부모도 아이의 적성은 뒤로한 채 "서울대 몇 명 진학"이라는 타이틀에 아이를 집어넣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무산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 역시 총장 추천제라는 이름으로 대학을 서열화하려하지 않았나?

일류대 창구 된 자사고

연간 800만원 가까운 비싼 학비를 받는 탓에 ‘귀족학교’로 불리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얼마나 보냈는지가 신입생 모집 때 간판이 되니 성적에 더 민감하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월 낸 ‘고교 유형별 학비 현황 비교·분석’ 정책 보고서를 보면 2013년 자사고 학생의 연평균 학비는 778만 원이었다. 대표적 자사고인 민족사관고의 연간 학비는 2124만원으로 샐러리맨 연봉과 맞먹는다. 이에 비해 올해 대전지역 일반고교의 연간 수업료는 140만400원이다.

자사고에 아이를 보내는 일부 학부모들은 많은 수업료를 받으며 ‘SKY 대학’에 진학시키는 비율이 일반고와 별 차이가 없다면 자사고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한다. 학생들에게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환경을 제공한다는 자사고의 설립취지는 사라지고 일류대를 보내기 위한 창구로 변질된 것 같다. 우리 사회의 1등 지상주의와 성적 중심주의의 단면이다.

자사고 폐지 공약 낸 교육감후보

하지만 자사고의 인기는 신통치 않다. 올해 광역단위 자사고 경쟁률이 1.28대 1에 머물렀으며 지방 자사고는 미달사태를 빚을 정도였다. 대전에서는 대신고(0.95대 1)와 서대전여고(0.84대 1)가 올해 미달사태를 겪었다. 여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사고 폐지 밤샘농성을 벌이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서울시교육감 진보진영 단일 후보인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자사고를 폐지하겠다는 공약까지 내놨다. 자사고가 설립취지와 다르게 국어, 영어, 수학 과목 중심의 입시위주 교육만을 해 고교서열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주장의 근거다. 만약 그가 서울시교육감이 된다면 50개에 달하는 전국의 자사고가 폐지대상에 오를 수 있다.

자사고 문제 외에도 일선 학교에서 걱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육정책을 내놓지만 고교서열화 자체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가 대전시교육감이 되어도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기를 들기 어려우며 잘못된 우리 교육의 근간을 바꿀 수도 없다는 실망감이 크다. 아무리 좋은 공약을 내세웠더라도 교육감에 당선되고 나면 정부 방침대로 따라간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지역의 한 고등학교는 이번 주나 다음 주 중 중간고사를 치른다. 다행히 일부 교사들이 진화에 나서 문제제기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이해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학부모들도 혹여 자신의 아이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이번 일을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신 한 등급을 높이기 위해 학생에게 시험문제까지 가르쳐 주려한 이번 일이 비단 일개 고등학교만의 일인지 의심스럽다. 학생은 물론 학교까지 줄 세우는 우리 교육현실에서 일류대에 더 많이 넣기 위해 지속적으로 빚어졌고 지금도 이뤄지는 일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교육감 후보 공약은 먼 나라 얘기?

교육감 후보들은 인성교육, 창조교육, 교육격차 해소, 고교 무상교육 등 다양한 공약들을 쏟아냈다. 이들 공약대로라면 우리 아이들은 인성과 창의력을 겸비한 공부 잘하는 아이들로 자랄 수 있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는 이들의 공약이 전혀 체감되지 않는 먼 나라 얘기 같다고 말한다.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고 교육격차를 해소해 꿈과 끼를 발휘하는 창조교육을 하겠다지만 과도한 경쟁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서열화 되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해방시킬지에 대한 구체적 해법은 없다. 교육현실을 제대로 파악한 가운데 나온 세밀한 대전교육정책이 아쉽다. 이슈도, 차별화된 공약도 없이 그럭저럭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가 되지 않으려면 후보들은 좀 더 세밀한 정책으로 유권자에게 어필해야한다. 유권자들도 이들의 공약을 꼼꼼히 따져 표를 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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