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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클턴·정주영에게 배우는 긍정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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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클턴·정주영에게 배우는 긍정적 사고
  • 나창호(전 부여군수)
  • 승인 2014.01.13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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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자살 1위 오명을 씻자

1909년 미국의 피어리가 북극점을 정복하고, 1911년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콧이 차례로 남극점에 도달하자, 영국의 어니스트 섀클턴은 자신의 목표를 남극대륙 횡단으로 바꾸고 탐험대원 27명과 함께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대탐험에 나선다. 1914년 12월 5일의 일이다. 하지만 그는 남극대륙에는 발도 디디지 못한 채, 배가 부빙에 갇혀 남극 바다 웨들 해를 떠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부빙의 압력에 배마저 난파당하자 배에서 빼낸 물자와 보트 3척만을 갖고 얼음 위 생활을 하게 된다. 해가 뜨는 시기는 그나마 견딜만했지만 해가 뜨지 않는 시절은 영하 30도가 넘었다. 식량마저 떨어지자 물개와 바다표범, 펭귄을 잡아먹는 생활을 하게 된다. 고기는 식용하고 기름은 연료로 썼다. 어느 날, 부빙의 틈새를 이용해 보트로 부빙을 탈출하지만 그들이 바다를 떠돌다 어렵게 착륙한 곳은 무인도 엘리펀트 섬이었다.

1916년 4월 24일, 섀클턴은 이들을 섬에 남겨 두고 구조 길에 나선다. 그를 포함한 여섯 명이 보트 한 척에 의지해 당시 포경 전진기지였던 사우스조지아 섬을 향한다. 그들이 항해를 처음 시작했던 바로 그 섬이다. 무려 1400㎞를 항해해 섬에 도착하지만 포경 기지가 섬 반대편에 있어 그들은 또다시 등산 장비 없이 높은 얼음산들을 넘어 섬을 횡단하는 악전고투를 한다. 마침내 포경기지에 도착하게 되고 칠레 정부로부터 구조선 옐코 호를 빌려 무인도에 있던 대원 22명을 모두 구출한다. 1916년 8월 30일의 일이다. 엘리펀트 섬을 떠나 구조 길에 나선지 4개월이 지난 후였다.

이들은 무려 634일간이나 남극의 혹독한 빙벽 속에 갇혀 있다 모두가 생환하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희망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사고의 결과다.

우리나라에서도 긍정적 사고로 성공을 이룬 분이 고(故) 정주영 회장이다. 1970년대 중동 진출을 모색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을 불러, 중동에 정부 관료를 보냈더니 "날씨가 너무 덥고 물이 없어 건설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정 회장이 한번 다녀오시라"고 권했다.

정 회장은 중동을 다녀와서 박 대통령에게 중동은 건설 사업의 적지라면서 "모래와 자갈이 건설 현장에 풍부해 물만 운반하면 되고, 비가 안와 언제나 공사가 가능하며, 낮에는 텐트 속에서 잠을 자고, 밤에 횃불을 들고 일하면 된다"고 했다. 결국 현대는 정부 지원 속에 중동에 진출하여 많은 오일 달러를 벌어 들였다. 발상을 전환한 긍정적인 사고의 결과다.

지금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다. 생계난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너무 쉽게 절망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생활이 아무리 절박하고 고통스러워도 삶을 함부로 접어서는 안 된다. 섀클턴과 그의 대원들은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극한적 환경에서도 살아 돌아왔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다"라는 소포클레스의 말을 상기해 보자. 삶은 고귀한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비관론자는 매번 기회가 찾아와도 고난을 보고, 낙관론자는 매번 고난이 찾아 와도 기회를 본다"고 했다. 낙관론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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