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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지 못한 우리사회의 반영
  • 김선미(시사컬럼니스트)
  • 승인 2014.01.07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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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 영화 ‘변호인’을 보고

영화 <변호인>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극장을 소유한 CJ, 롯데, 쇼박스 메이저 3사가 배급하지 않은 현실적 불리함, 특정인을 내세운 정치적 영화 논란, 별점테러, 대량 예매 환불 소동 등 온갖 구설을 뚫고 말이지요. 벌써 제작비를 회수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국민들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셈이죠.

영화 <변호인>의 내용은 이미 알려진 대로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피뢰침에 번개가 꽂히듯, 돈 잘 버는 속물 ‘세무변호사’에서 ‘인권변호인’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된 사건이 모티브가 됐습니다. 1980년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부산의 ‘부림사건’이지요.

시대가 투사를 만들어냈다고 했듯 공권력을 사유화한 정권의 부당한 폭력성 앞에서 ‘당신의 재산을 시대가 지켜주는’ 편안한 일에서 ‘국민의 인권을 지켜내는’ 험난한 일로 ‘전직’하게 만든 치열했던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이 겪은 실제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 했습니다.

영화는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의 일화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우려됐었습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일대기에 그쳤다면 지금과 같은 흥행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요? 대중적 재미와 공감을 얻지 못했으면 절대 흥행에 성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잘 만든 상업영화라는 얘기입니다.

사실 모티브만 전직 대통령의 일화일 뿐 현재진행형인 상식과 합리성, 정의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영화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내내 울었다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화장실에서 마주한 중년의 엄마와 20대 딸은 거울 앞에서 눈물 자국을 지우느라 연신 손에 물을 묻혀 눈가를 훔쳐내더군요. 그 모습이 더 울컥하게 했습니다.

영화 <변호인>에 대한 평과 후기는 차고 넘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를 보며 어떤 이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또 다른 이들은 매캐한 최루탄 냄새에 대한 몸의 기억에 몸서리를 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리는 것은 과거에 대한 연민이나 회고만으로는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기시감. 이제는 지나간 과거라 여겼던 30년 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금의 시대상황도 분명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었던 일들조차 정권과 국민, 사회와 나 사이에 안 통하는 답답한 현실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결국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게 어디 있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송변호사가 과거의 인연 때문에 억지춘향으로 고문으로 넋이 나간 국밥 집 아들 진우를 만나고는 던진 외마디 절규입니다. 단말마적 외침은 더 이상의 이성도, 논리도, 거창한 법리도, 아름다운 언어로 쓰인 헌법조차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래야 하는 분노였습니다.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보고 공부하기 싫어서 저러는 거라고 비아냥거리던, 돈 버는 데만 몰두하던 속물 변호사 눈에도 이건 도무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요.

상식(常識, common sense)은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 지식, 판단력을 말한다고 사전에 풀이되어 있습니다. "common sense가 무슨 뜻이야?" "그건 상식이지. 상식." 선문답 같은, 농담 같은 대화이지만 상식에 대한 핵심을 찌릅니다. 구구하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끼리는 당연히 공유되는 가치관, 판단력이 상식일진대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작동되는 것 같습니다.

실체도 증거도 불명확한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모진 고문을 가하면서도 "내가 애국자"라고 큰소리치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전도된 나 홀로 상식, 자기들만의 원칙, 나만의 진정성이 보편적 상식, 원칙, 진정성을 대신하고 있는 것을 우리사회 곳곳에서 목도하게 됩니다. 소통, 공유가 아니라 일방적 독주이지요.

국가권력이든 지방권력이든 사적 조직이든 개인사이든 작금의 우리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나 홀로 상식이 아닌 보편적 상식과 원칙의 회복인 것 같습니다. 상식 안에 이미 보편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음에도 새삼 ‘보편적 상식’을 강조해야 하는 것은 그만큼 이들 언표들이 본뜻을 잃고 왜곡, 굴절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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