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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전혜린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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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전혜린의 ‘아버지’
  • 김선미(디트뉴스 주필)
  • 승인 2013.12.23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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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 ‘박근혜 키즈’들과 측근들의 잇단 쓴소리

"아버지를 대상으로 마치 제단 앞에 향불을 쌓듯 지식을 쌓아 올렸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전혜린을 다시 떠올린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친일 부역자여서도, 그녀가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때문도 아니었다. 나도 한 때 탐닉했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부친의 뜻에 따라 애초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중도에 전공을 독문학으로 바꿀 만큼 당차고 세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에게도 넘지 못할 하나의 벽이었다. 이른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장녀 콤플렉스’다. 아버지를 숭배하고 각별히 여기면서도 두려워하는, 천재 소리를 들으며 불꽃같이 살았던 전혜린도 그랬다.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기틀을 잡았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가 싶더니 드디어 ‘박근혜 키즈’들마저 연일 쓴 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준석, 손수조. 일 년 전 박근혜 대통령 후보 곁에서 신선함을 안겨 주었던 젊은 피들이다.

이들의 쓴 소리 이면에 우리가 알 수 없는 고도의 정치공학적인 측면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알지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발언은 야당 정치인들의 어느 발언보다 더 용감하고 정곡을 찌른다.

수위 높은 발언들이 같은(?) 편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새누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우려를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시절 발탁한 이준석 전 비대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과 장하나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의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부동산 대책 등에 대해서는 정작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지 못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155명의 의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는 것을 보면 ‘전체주의’적인 느낌이 난다"며 "새누리당이 과거의 잘못됐던 구태를 답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에서의 발언수위는 더 높다. "지도자의 심기만 살피는 면이 ‘북한만의 이야기인지는 미지수’"라며 대통령을 둘러싼 경쟁적 과잉충성을 비판했다. 당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며 박근혜 대통령만 바라보는 ‘종박(從朴)’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칼날은 외형적으로는 새누리당을 향하고 있으나 결국은 박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 비판인 셈이다.

‘전체주의’ ‘북한만의 이야기인지…’ 등등. 아슬아슬 수위 높은 이 같은 발언들이 다른 이들의 입에서 나왔으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지금쯤 "어디 감히 북한 비교 운운 하느냐"며 대뜸 호환, 마마보다 백배 천배는 더 무서운 ‘종북몰이’에 나섰을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던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 되며 묶여 갈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전혀 다른 지향을 갖고 국정을 운영한다 해도 그렇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떨쳐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긴급조치로 대변되는, 일상적 삶마저 옥좼던 유신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이 시대까지 드리우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나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전혜린의 문장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정녕 아버지를 넘어설 수 없는 일인가.

박 대통령이 아버지를 넘어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아버지가 갖지 못했던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궁극적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갈등과 불안의 정치를 끝내는 것은 야당이 아니고 승자인 박근혜 대통령 몫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더 빛내기 위해서도 그렇다.

박 대통령이 반대편 주장이 듣기 거북하다면 적어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아끼는 젊은이들의 외침만이라도 경청해야 한다. 최근 <국정은 소통이다>라는 책을 낸 고건 전 총리는 "소통의 시작은 경청"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한번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신의 벽을 막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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