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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줌마’를 조심하라?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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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줌마’를 조심하라?①
  • 강수돌(고려대 교수)
  • 승인 2012.07.2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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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불안감(3)

언젠가 대안교육 전문지인 <민들레>에서 "옆집 아줌마를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등장한 적이 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바로 이것이다!"라고 느낀 적이 있고 졸저 <나부터 교육혁명>에도 그 이야기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한 지도 벌써 10년이 가까운 데 여전히 우리 사회 ‘옆집 아줌마’의 위력은 너무나 거세다. 여기서는 이 이야기를 좀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우선, 내가 여기서 ‘옆집 아줌마’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아줌마 또는 어머니가 문제라고 하는 건 아니다. 사태의 본질은 아빠는 돈벌이 기계, 엄마는 아이 교육 담당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눠진 현실이 잘못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엄마나 아빠가 일정한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되 하루 중에 한 나절만 하고 그 외 시간의 일부를 자녀 교육이나 자녀와 함께 활동하는 데에 쓰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안팎이 나눠진 상태로, 그리하여 엄마가 아이 교육,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이의 점수 올리기나 일류대 준비시키기 를 전적으로 담당하다 보니 사실상 엄마도 아빠 못지않게 중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현실도 장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잘못된 현실을 정확히 인지한 위에서 ‘옆집 아줌마’ 이야기를 다시 보자. 이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가 아무리 좋은 강의를 듣고 아무리 좋은 책을 읽은 뒤 굳게 결심을 한다 하더라도 다음날 옆집 아줌마만 만나고 나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옆집 아줌마는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 우리가 단단 히 결심을 한다 하더라도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까?

옆집 아줌마가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인성 교육이고 자연 교육이고 대안 교육이고 말은 참 좋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앞으로 더욱 살벌해질 사회에서 과연 아이가 먹고살 수나 있을까?" 그렇다. 생계 문제다. 생각해보니 지금 아빠도 바로 그 생계 전선에서 매일 힘겹게 살고 있지 않은가? 경쟁은 치열하고 사회가 만들어놓은 사다리 질서에서 높은 등급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아이도 나처럼 ‘뺑 이 치고’ 살게 될 것 같다. 심하면 서울역 같은 데서 보는 노숙자처럼 될 것 같은 위기감이 식은땀을 흐르게 한다. 결론은 "그래,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네. 아이고, 이를 어쩌나? 혹시 좋은 학원이나 과외 선생 아는 데 있니?"로 끝난다.

이제 이 부분을 본격적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며 끝장 토론을 해보자.

첫째, 그런 식으로 경쟁 교육을 받는 가운데 과연 부모인 나는 행복하게 자라 왔던가?

그리고 현재 아이들은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는가? 만일 나도 행복했고 아이도 진정으로 행복하게 느낀다면 그렇게 가시라. 내가 진정 바라는 것도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욱 치열하게 경쟁적으로 공부하면 된다. 그것이 참 행복의 길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내가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고 또한 지
금 우리 사회에서 자살하는 아이들,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 교실 붕괴를 촉진하는 아이들, 탈학교를 결심하는 아이들을 곰곰 생각해보면, 결론은 모두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들이다. 이 땅의 대부분 부모들이 너도나도 자기 자식을 전쟁과 같은 입시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그것이 행복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근본적인 대안을 찾지 못해서이다. 다른 말로, 보다 슬기로운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그런 식으로 경쟁 교육을 계속한 것이 지난 50년 정도의 대한민국 교육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고2-3학년을 열심히 하면 대학 간다고 했다. 한 10년쯤 지나니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가? 초등 시절부터 대입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어떤 이는 아예 뱃속 아기 시절부터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할 지경이다. 심지어 어떤 엄마는 세 살짜리 아이의 혀 밑 근육을 잘라 영어 발음을 원어민처럼 하게 만든다고 해 해외 토픽감이 된 적도 있다. 결론은, 우리 모두가 미쳐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가면 10년 뒤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과연 더욱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실력을 듬뿍 다지고 배움의 기쁨에 행복해하며 모두 튼실한 실력자가 될까? 옆집 아줌마가 이야기하는 식으로 모두들 따라 갔을 때 이 세상은 좋아지는 걸까 아니면 나빠지는 걸까? 우리가 길을 걸어도, 이게 죽으러 가는지 살러 가는지는 알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셋째, 아이의 생계 문제는 굳이 부모가 일일이 걱정하지 않아도 아이가 머리가 커지면 스스로 고민하게 되어 있다.

생각해보라. 과연 현재 우리가 이 정도로 사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 우리의 유년시절부터 미래의 생계를 생각해서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는 식으로 해서 가능했던 것인가, 아니면 몸 건강하고 마음 건강하게 키워 주신 덕에 철이 들면서 스스로 고민하고 개척해서 이 정도까지 나온 것인가? 게다가 부모가 모든 걸 마련해주는 것이 행복할까 아니면 아이가 숟가락 하나라도 스스로 장만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일까? 옛말에 "아이 먹을 것은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진정 걱정할 것은 아이의 생계가 아니라 꿈이다. 꿈을 키우는 아이, 그 꿈을 좇아 즐거운 마음으로 실력을 키운 아이, 그 실력을 자기행복만이 아니라 사회행복을 위해 쓸 줄 아는 아이, 바로 이런 ‘일류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이 사회는 5년 뒤, 10년 뒤에 보다 행복한 세상이 된다. 그렇게 꿈을 키우고 실력을 키워 사회 헌신까지 하는 아이들은 생계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한다.

꿈을 좇아 정진하는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실력을 인정받아 먹고살 길도 열린다. 비록 호화판으로 살지는 못해도 된장찌개에 김치와 밥은 굶지 않는다. "산입에 거미줄 안 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 스스로도 취업과 진학의 갈림길에서 이 아홉 글자 덕에 진학을 한 끝에 지금의 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만날 생계 걱정만 하며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돈과 권력에 넘어가거나 아부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삶의 중심이 없기 때문에 만날 재테크 이야기만 하고 산다. 반면에 자신의 꿈과 소신에 따라 사는 이들의 인생은 향기가 나고 멋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온 사회도 멋진 사회가 된다. 이제, 옆집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며, 옆집 아줌마조차 진정한 자신의 삶을 되찾도록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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