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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 명장 ‘리우타이오’, 진짜 소리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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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 명장 ‘리우타이오’, 진짜 소리를 만들다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7.04.03 09:09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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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종현악공방 서민지 제작가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나만의 감성과 기교를 충분히 표현해 낼, 자신에게 꼭 맞는 악기를 만나는 것은 연주자들에게도 꿈같은 일이다. 

서양 현악기 제작의 본 고장 이탈리아 크레모나 제작학교 출신의 젊은 장인이 세종시 고운동에 현악 공방을 차렸다. 바이올린 연주자 출신 서민지(34) 제작가는 지난 6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최근 세종에 정착했다.

오케스트라도, 음악 학교도 아직 없는 불모지에서 연주자에서 제작가로 변신한 그를 만나 좋은 악기와 제작가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대학 졸업 후 이태리행, ‘크레모나 제작학교’란?


역대 바이올린 제작가 중 최고로 꼽히는 마에스트로 스트라디바리(Stradivari). 그의 고향 이태리 크레모나 시는 세계 최고의 현악기 명장들이 모인 곳이다. 골목골목마다 나무를 깎는 장인들이 가득하고, 제작가를 꿈꾸는 이들도 이곳을 가장 먼저 찾는다.

이곳 크레모나 시에 위치한 크레모나 제작학교는 바이올린 명장을 배출해온 국제학교다. 스트라디바리의 후예를 양성하고, 바이올린 제작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민지 제작가는 “한국어로는 현악기 제작가로 불리지만 이탈리아어로는 리우타이오(Liutaio)라고 부른다”며 “5년 학제에 견습 과정 1년을 거쳐야 하는데, 점차 한국인 유학생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특히 손재주가 좋고 성실하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마에스트로 한 명당 최대 10명의 학생들을 가르친다. 5학년까지 약 150여 명 정도가 재학 중인데, 이 중 한국인이 40여 명에 이른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아시아인이 일부, 나머지는 유럽 출신 학생들이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서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고향에서 대학교까지 마친 후 제작가의 길을 걷게 된 건 순전히 악기 수리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됐다. 

그는 “항상 악기 수리나 교체를 하러 가면 고쳐주시는 분들이 멋있었던 기억이 있다”며 “기회가 닿아 제작학교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됐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태리로 떠났다”고 했다.

2005년 처음 간 이태리에서 그는 1년 간 언어학교를 먼저 다녔다. 줄곧 연주를 해왔고, 한국에서 기본 제작 과정을 익혀간 덕분에 크레모나 제작학교에는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학교 과정을 마친 뒤에는 1년 동안 이태리 공방에서 견습과정을 거쳤다. 이후 2010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 서초동 공방에서 6년 간 일하다 세종에 자신만의 공방을 열게 됐다.

그는 “크레모나 제작학교에 입학해 나무 이론과 음향학, 연주, 디자인, 캐드, 역사 수업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거쳤다”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비롯해 고악기 뮤트, 만돌린 제작 과정과 수리·복원 교육도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기성품과 수제품의 차이, 손으로 만드는 ‘소리’

여러 명이 분업해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기성품과 달리 공방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한 사람의 손에서 한 대의 악기가 탄생한다. 바이올린 한 대를 제작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치수 설정부터 칠, 건조 과정까지 총 2개월이 걸린다.

크기가 큰 첼로의 경우 소요 시간은 물론 재료비도 4배 이상 소요된다. 수요는 적지만 그만큼 고난도 작업에 속한다. 

그는 “기성품과 수제 악기와의 차이점은 우선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데서 오는 통일감과 연주자 각각의 치수와 스타일 적용이 가능한 점”이라며 “손가락이 유독 짧으면 악기 넥 부분을 짧게 하는 등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조정이 가능하다. 체형과 스타일에 따라 악기를 자신에게 맞출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악기 턱 받침도 3D로 제작하는 추세”라고도 덧붙였다. 

원하는 악기 모델을 정하면 그 다음 해야할 일은 ‘나무’를 정하는 일이다. 악기의 앞판은 전나무, 대부분 뒷판은 단풍나무를 쓰는데 각각 무게가 다르다. 앞판이 훨씬 가볍다. 

실물 사이즈에 맞는 치수대로 플라스틱판을 대고 재단하고, 열을 가해 옆판을 휘어붙인다. 아칭의 각도와 모양대로 두께를 맞춰 파내는 등 복잡한 후반 작업을 거치면 끓인 풀로 붙이는 과정과 칠, 건조 과정이 반복된다. 

그는 “어떤 나무를 쓰느냐에 따라 이미 소리는 정해지기도 한다”며 “잘 건조돼 숙성된 나무, 몇 년산 나무인지, 나이테 간격이 어떤지, 결이 곧은지 잘 따져야 한다. 각각의 치수는 길어도, 짧아도 안 되고 개성이 들어가게끔 변형하면서 일관성 있게 컨셉대로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짧게는 2개월, 길게는 수개월이 걸리는 제작과정. 오랜 시간 손을 거친 악기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는 “직접 만든 악기는 언제, 어디서, 어떤 나무를 샀는지부터 제작하면서 들었던 음악까지 그 시절이 전부 기억에 남는다”며 “그만큼 모든 신경을 집중해 제작에 힘썼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악기는 곧 ‘좋은 주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은 수십 억 원에 이른다. 그는 70여 년에 걸쳐 1100여 대의 악기를 만들었는데, 현재 바이올린의 경우 현존하는 악기가 450여 대 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비로울 만큼 좋은 음색과 희소성 때문에 백 년이 넘는 고(古)악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아직까지 짙지만, 새 악기의 장점도 있다. 

서 씨는 “고악기의 경우 손때가 타서 균열도 많고 찌그러지는 등 계속 수리해서 써야하기 때문에 관리가 힘든 편”이라며 “결국 건강하고 튼튼한 악기, 새로 만들어졌지만 잘 관리된 악기도 좋은 악기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흔히 악기도 주인을 닮아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연주자의 성향과 스타일에 따라, 어떻게 관리하고 보관했느냐에 따라 악기의 소리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악기도 곧 사람과 같다. 여름에는 시원한 걸 좋아하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는 것. 실제 더운 여름 보관을 잘못 했다가 앞면과 뒷면, 옆면이 분해된 채로 수리를 맡기는 경우도 있고, 뜨거운 온도에서 겉면에 기포가 올라와 변형되기도 한다. 좋은 악기는 곧 좋은 주인에게서 탄생되는 셈이다. 

그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한 번 아프면 악기도 쉽게 낫지 못 한다”며 “갈라지고 싶어 하는 악기는 계속 갈라지고, 틀어지고 싶어 하는 악기는 계속 틀어지기도 한다. 결국 악기도 곧 나무, 자연이기 때문에 건강하고 예민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인이 관리를 얼마큼 해주느냐에 따라 아픈 악기도 나을 수 있다”며 “가끔 단체에서 쓰는 악기나 어린 아이들이 쓰는 악기의 경우 처참할 정도로 고장이 나있는 경우가 많다. 악기에 뭍은 화장품을 잘 닦아 주지 않는 경우 독한 향수나 화장품으로 인해 변형되기도 한다”고도 했다.

제작·판매·수리까지, ‘장인’ 이미지 편견도


세종현악공방에서는 수제 악기 외에도 10만 원 대 취미용 악기부터 시작해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직접 기성품 물건을 가져와 줄 간격이나 높이 등을 손보거나 반제품을 구매해 칠하고, 치수를 깎아 다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가장 저렴한 연습용 바이올린은 15만 원부터다.

그는 “현재 세종시에서는 제작 악기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고, 아직 예술고나 예술중학교 등 관련 인프라도 적은 편”이라며 “제작 악기 외에도 일반 악기 판매와 수리, 교체까지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세종시에 공방을 내면서 그는 이곳을 교류의 장으로 꾸몄다. 제작 공간 외에도 테이블과 연습실, 작은 4중주 합주가 가능한 곳으로 만든 것.

그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로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며 “앞으로 세종시 인구가 더 늘어나고 인프라가 갖춰지면 시향도 생기고, 음악학교도 늘어나고 제작 악기를 찾는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한 그는 제작가라는 직업이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유학파 전문 제작학교 출신이지만,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는 것.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장인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젊은 제작가들의 경우 편견에 부딪히기도 한다”며 “실제로 장인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제작을 의뢰한 연주자들이 당황하는 경우도 있어 일부러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게 노력하기도 한다”고 웃었다.

바이올린의 진짜 소리.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고장 크레모나에서 온 젊은 제작가의 공방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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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2017-04-09 20:43:01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려면 장인이 필요합니다 ㆍ 우리민족에게 신이주신 선물은 끈기와손재주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장인의 출현과 정착을 축하드리며 세계인이 인정하는 악기장인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늘 지켜보겠습니다

모카랑 2017-04-05 22:00:15
세종시에 악기 제작 공방이
생기므로 더 가까이에서
악기를 접할 수 있슴이 너무나
감사해요
세종현악공방의 발전을 기대하며 .....

하늘♡ 2017-04-09 08:24:15
예쁜공방..예쁜여인이 그림같아요^^;
읽어보니 우와~~~~~~
악기제작. 악기판매. 악기판매와 수리까지..
시간내서 꼭 가보겠습니다

중년영계 2017-04-04 21:51:24
대단하십니다^^이태리 크레모나시처럼 세종시에도 현악기를 제작하는 장인들이 많이배출될수있도록 노력 부탁드립니다^^

멋쟁이 2017-04-04 21:54:58
젊은 멋진 현악기제작가에 박수를보냅니다~세종시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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