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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은 무시·차별·혐오에서 시작
  • 세종포스트
  • 승인 2014.12.2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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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인정의 시대’

동등한 존재 인정받고 싶은 열망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시각으로
한국 사회 갈등 분석, 대안 모색

“모든 정치적 투쟁은 사회적 무시에 대한 도덕적 분노로부터 시작된다.”

2011년 미국 뉴욕시에서 시작한 ‘월가 점령(Occupy Wallstreet)’ 시위는 들불처럼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졌다. ‘99%의 행진’으로도 불린 이 시위는 상위 1%가 부를 독식하는 신자유주의 구조를 비판하는 정치적 투쟁이었다. 이 거대한 점령시위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구조변동을 ‘인정’이라는 틀로 분석한 책이 나왔다. 문성훈 서울여대 현대철학과 교수의 책 <인정의 시대>는 프랑크푸르트학파 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인정이론을 토대로 사회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무시와 분노, 즉 타인과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평범한 이들의 운집이 사회적 투쟁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책은 낯익은 한국사회의 시위와 투쟁을 토대로 인정이론을 설명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계기로 번진 촛불집회는 ‘정부가 국민을 무시했다’고 느낀 국민이 주권적 존재로서 인정받으려 했던 투쟁으로 풀이된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성소수자의 목소리에도 다른 이들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인정투쟁이 꼭 정당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일베’나 일부 기독교 분파의 동성애 혐오 발언은 호네트의 인정이론에 부합하지 않는다. 인정투쟁은 기존에 형성된 사회적 인정 질서의 범위와 내용을 확장할 때 정당화될 수 있는데 반해 ‘일베’와 기독교 분파의 동성애 혐오 발언은 오히려 기존 인정관계의 범위와 내용을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호네트 인정이론의 핵심을 “사회적 갈등의 원인은 인정과 반대되는 사회적 무시”로 규정하고 “사회적 무시를 넘어서 새로운 인정관계를 형성하려는 사회적 투쟁”이 인정투쟁의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왜곡된 인정관계가 일상적 무시, 차별, 혐오를 낳고 그 결과 사회 곳곳에서 인정투쟁을 유발한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극심한 사회 갈등을 해결하려면 각 영역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인정 요구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인정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친밀성, 정치, 경제, 문화, 세계질서 등 다섯 가지 영역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인정 요구를 구체적으로 탐색해 대안을 제시한다.

친밀성 영역의 인정관계 구조변화를 다룬 4장에서 저자는 현대사회의 부부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급증하는 이혼율은 남성과 여성이 전통적 성 역할의 담당자가 아니라 자신을 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의사결정 영역의 인정요구 변화를 다룬 5장에서는 ‘촛불 집회’ 등 ‘광장민주의의’를 분석한다. 저자는 시민이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에서 명실상부한 주권적 존재로서 변화하려는 시도, 즉 유권자가 아니라 주권자로 인정받으려는 요구가 광장민주주의로 발현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 밖에도 ▲비정규직, 실업자 모두를 노동주체로 인정하자는 요구(경제 영역) ▲소수자를 사회 일원으로 인정하자는 요구(문화생활 영역) ▲국민이 아닌 세계시민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요구(세계질서 영역) 등을 다룬다.

책장을 덮고 나면 “모든 정치적 투쟁은 사회적 무시에 대한 도덕적 분노로부터 시작된다”는 저자의 대전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파트 경비원을 대하는 일부 부유층의 태도, 비행기 승객과 직원을 ‘아랫것’으로 치부해 벌어진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등 한국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무시’가 시민의 ‘도덕적 분노’를 불러왔다. 저자의 말처럼 일상에서 느끼는 시민의 분노는 언제든지 ‘정치적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휴기사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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