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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바보의 꿈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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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바보의 꿈이 가능할까
  • 송 전 교수(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공연예술학과)
  • 승인 2014.12.08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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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의 연극읽기 | ‘맨 오브 라만차’

‘돈키호테’에 세르반테스 덧입힌 뮤지컬
바보 행적, 불합리 고착된 현실의 삶 전복
감시·은폐의 사회, ‘바보’ 존재할 수 없어


유럽 후기 중세시대의 스페인 어느 한 지하실 감방. 두 명의 죄수가 종교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죄수는 세르반테스와 그의 하인이다. 그들은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어 강도, 살인범, 창녀들과 함께 종교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감방의 간수가 수감자들로부터 소지품들을 모두 수거하는데 그 중에 세르반테스의 원고뭉치가 들어있다. 세르반테스는 그것이 장차 펴낼 자신의 책 원고임을 증명하기 위해 형상인물 돈키호테로 변신하고, 감방죄수들과 함께 이야기를 펼쳐내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감방은 거리의 술집으로 변한다.

감방 안에 있던 여인 알돈자는 품행이 방정치 못한 술집여급인데, 돈키호테는 그녀를 둘시네아라고 이름붙이고 환심을 사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돈키호테의 조카딸 안토니아와 그녀의 약혼자 카라스코는 그를 쫓아다니며 상상의 적들과 벌이는 여러 양상의 무의미한 싸움들을 못하도록 말려댄다. 카라스코는 위장기사로 변장하여 돈키호테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도록 압박하고 돈키호테 자신이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라 처량한 노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오직 돈키호테로부터 귀부인 대우를 받았던 알돈자는 불가능한 꿈을 계속해주고 갑옷을 다시 입어달라고 애원한다. 돈키호테는 이 여인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알돈자는 이후에도 스스로를 둘시네아로 이름 짓고 자신을 앙모했던 영웅이 꾸었던 꿈을 계속해서 살아낸다: “그 꿈을 이룰 수 없어도 / 싸움 이길 수 없어도 /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 길은 험하고 험해도 /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 사람을 믿고 따르리라 /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 힘껏 팔을 뻗으리라 / [...] /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 마지막 힘이 다 할 때까지 / 가네 저 별을 향해.” 감방 안의 연극놀이는 마무리된다.

감방장은 이 연극놀이에 감동하여 세르반테스에게 원고를 되돌려준다. 지하 감방의 덮개가 열리고 사다리가 내려온다. 세르반테스는 계단을 올라 종교재판정으로 나아간다.

우리나라에도 상연된, ‘한 바보’ 돈키호테를 형상화한 뮤지컬 <더 맨 오브 라만차>(1965년 미국에서 시연이 이뤄짐)의 내용이다. 바보는 엉뚱한 짓을 한다. 명료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 현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자가 바보이다. 누가 봐도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진 여성인 창녀에게 한 늙은 남성이 시대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부조화한 장엄한 복장을 한 채 엄숙한 동작과 말씨로 사랑을 고백하며, 이 여성 앞에 꽃다발을 내민다. 꽃다발은 아름답게 피어난 생화가 아닌, 길거리에 버려진 꽃들을 모아 놓은 것이거나 아니면 들판의 보잘 것 없는 야생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주위 사람은 이 바보의 짓거리에 웃음을 터뜨린다. ‘저 바보, 미친 짓을 하고 있어!’라고 외치며.

서양 중세의 끝자락을 살았던 에스파니아의 작가 세르반테스(1547-1616)는 <돈키호테>(1605)의 작가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그가 빚어 낸 소설의 형상인물처럼 바보같이 생을 살다 간 사람이었다. 돈 버는 데 실패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지지리 힘들게 세상을 살았다. 르네상스 시절의 인문주의 교육을 받았던 그였지만 법망(法網)을 피해 고향을 떠나 로마로 도주했다가 어떻게 해서 군인의 길로 들어섰고, 근세로 넘어오면서 기독교 세력(신성로마제국)과 이슬람세력(오스만투르크 제국) 사이에 벌어진 역사적인 대해전(大海戰)인 레판토 해전에 참여하여 한 팔을 잃은 부상군인이 되기도 하고, 그 이후 계속 해군으로 근무하던 중 포로로 잡혀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5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중년의 나이에 세무공무원을 하다가 공금횡령의 혐의로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를 세계의 작가 반열에 끼게 만든 <돈키호테>를 처음 써서 발표했던 나이는 57세였고, 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자 가짜 속편이 나오는 것을 보고 후작을 낸 나이는 68세였다. ‘바보’같은 나이에 700페이지가 넘는 바보 이야기를 쓴 것이었다. 가난에 시달리던 그가 오랜만에 벌어들인 그 돈 마저 바보같이 날려버리고 궁핍 속에 삶을 마감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바로 그의 작품 <돈키호테>에 세르반테스의 형상을 덧입혀 만든 것이다. 늙은 바보에 의해 온전한 여성 대우를 받았던 거리의 여인 알돈자는 비로소 자신의 인간됨을 인식하게 된다. 새로이 얻은 자기 인식은 비록 난행을 당한 처지에 처했더라도 그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서양문학에서 바보 형상은, 모험소설의 영웅만큼이나 확고한 문학형상이다. 이들은 그들의 바보 행적을 통해 불합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고착되어 버린 현실의 삶을 전복(顚覆)시킨다. 이 흐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도 한 명의 바보로 자리매김한다.


현대사회는 그것도 한국 사회는 세찬 빛으로 시각을 마비시키는 서치라이트를 장착한 거대한 원형감시탑이 중앙에 놓인 원형감옥, 미셸 푸코가 말한 ‘판옵티쿰’ 같은 구조물이 아닌가 하는 망상에 가끔 사로잡히게 한다. 모든 개인정보들이 권력이 맘만 먹으면 까발릴 수 있는 사회. 그러나 가장 높은 권력은 완벽한 은폐를 이룰 수 있는 사회. 하루 동안 CCTV에 300회 노출되고 있는 감시 장치의 사회. 이런 사회, 이런 시대에 돈키호테처럼 꿈꾸는 ‘바보’가 존재할 수 있을까? 편이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존엄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과학의 모습은 진정 인간의 손을 벗어난 야누스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오직 냉소와 환멸 그리고 절망의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이 21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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