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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의 태생적 한계에 던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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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의 태생적 한계에 던진 경고
  • 김지용 영화감독(중부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 승인 2014.11.22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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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의 시네마쉐이크 | ‘인터스텔라’

수많은 메타포, 영화 관통하며 일관된 철학 보여줘
직관 없는 과학은 공허하고 과학 없는 직관은 맹목

‘직관 없는 과학은 공허하고, 과학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임마누엘 칸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사람들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판타지를 이해하는데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야만 겨우 머릿속으로 정리되어 감을 느끼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3시간동안 차원이 다른 세상에 다녀온 착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인터스텔라> 역시 <메멘토> <배트맨 시리즈 <인셉션> 등 전작들과 같은 맥락의, 혼란스러움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가까운 미래, 세계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농작물이 병이 들게 되고 심각한 식량부족과 환경재해에 직면한다. 인류 멸망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하면서 미국항공우주국(NASA) 조차도 경제적 이유로 해체돼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딸 머피의 방에서 책들이 멋대로 떨어지는 등의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딸 머피는 유령의 소행이라 이야기하지만, 아버지 쿠퍼는 그 움직임 속에서 어떠한 신호를 감지하게 된다. 일종의 좌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건 이미 없어진 줄 알았던 NASA였다.

NASA의 목적은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개척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때마침 태양계에서 웜홀이 발견된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 새로운 터전이 될 만한 행성을 발견하기 위해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 모르는 길을 향해, 아버지 쿠퍼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살리겠다는 의지하나로 미지의 여행을 떠난다.

NASA를 이끄는 과학자들의 수장 브랜든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통합한 시간의 방정식을 이미 풀지만, 3차원 우주에서는 그저 반쪽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탐험대를 파견한다. 브랜든의 통합이론은 쿠퍼가 5차원에서, 즉 블랙홀에서 보게 된 과거의 어린 머피에게 보낸 메시지가 당도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지만, 3차원 과학과 5차원 직관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풀지 못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주인공 쿠퍼는 처음엔 서재에서 신호를 보내는 ‘유령’은 없다며 무시했지만 가족을 살려야한다는 절박한 사랑이 시공간을 변화시켰다. 차원을 뛰어 넘는 중력에 메시지를 실어 딸 머피에게 보낸다. 블랙홀을 만들고 5차원을 만든 건 외부의 구세주가 아닌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순간 우주가 변하기 시작한다.

<인터스텔라>에는 수많은 메타포가 등장한다. 주인공들이 존재하는 농장의 집, 책으로 가득 찬 서재, 유령, 비밀스런 NASA의 기지, 이주를 위한 세 개의 별, 블랙홀, 그리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중력에 관한 이야기 등등. 한 가지 더 보태자면 각각의 캐릭터들과 수도 없이 반복되어 불리는 이름들이 영화의 전반을 관통하며 일관된 철학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러한 상징들을 칸트 식으로 정리하다보면 과학은 눈에 보이는 시공간, 즉 우리가 살아가는 3차원의 공간을 이야기하며, 직관은 초자연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또한 탐사선이 도착한 첫 번째 별은 물이 풍부하지만 먼저 탐험한 우주선이 파괴되어 반복된 신호를 보내는 죽음의 별이었다. 유물적 과학의 좌초를 상징한다.

쿠퍼의 딸 머피가 주장하는 유령의 존재나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중력 그리고 블랙홀은 가족에 대한 감성, 사랑, 눈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과 직관은 블랙홀 속에서 쿠퍼가 경험하게 되는 5차원으로 정리된다.

아버지 쿠퍼가 과학에서 출발해 직관을 받아들였다면, 딸 머피는 ‘유령’을 믿는 직관에서 출발해 과학자가 된다. 그러한 직관과 과학이 결국 두 사람만의 소통을 만들게 되고 중력과 블랙홀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냉정하게 일상을 쫓아간다. 위기의 지구도, NASA의 비밀기지도, 우주 공간 속 탐험가들의 일상 속에서도 담백하게 사람의 삶을 보여주고 상황을 차분히 조망한다. 감독은 이러한 질서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 변해야하고 자기의식을 고차원적으로 높이지 않는다면 3차원이라는 그저 태생적 한계를 지니는 이 공간에 갇히게 된다는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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