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히어로-안티히어로’ 속 숨은 코드는?
상태바
‘히어로-안티히어로’ 속 숨은 코드는?
  • 권도경 세명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인문기술연구소 소
  • 승인 2014.11.14 14: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도경의 인문기술 랩 | 형제 트라우마

주몽-대소왕자, 부모 트라우마의 파생
세종-정기준, 이념 공유하는 의사형제
이강토-키무라, 형제관계서 적대관계로


K-슈퍼히어로가 타고 났던 부모 트라우마는 현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형제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치유된다. 형제 트라우마를 해결해서 자신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거나 체제의 주도권을 획득해 부모가 되는데 성공함으로써 부모 트라우마의 치유는 완성되는 것이다.


형제 트라우마는 영웅인 자식의 이념이 형제의 그것과 충돌하는 데서 발생하는 트라우마다. 형제와 나는 부모의 자식들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현 세계의 질서에 대한 이념이 서로 상반된다. 나는 부모가 만들거나 주도하는 세계의 법칙을 전복시키고자 하고, 형제는 그것을 수호하고자 한다. 형제가 부모의 질서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나를 방해할 수밖에 없고, 나는 그러한 형제와 대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형제는 현 세계의 주인이거나 혹은 그 주도권을 두고 다른 부모와 다투는 영웅인 부모의 자식들로, 나와 같은 영웅의 일생을 살아갈 조건을 타고 났다. 다만 향유층의 이념적 공감을 사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히어로인 자식이 되고 나의 형제는 안티히어로인 자식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화적 영웅서사의 대표 격인 <주몽신화>에서 영웅인 나의 형제는 이전 세대 영웅인 금와왕의 혈통을 계승한 대소왕자다. 이전 세대의 영웅인 금와왕의 혈통을 계승한 적통왕자로, 금와왕이 만든 동부여의 건국이념을 중심으로 보면 신화적 영웅일대기의 주인공이 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주몽신화>의 건국이념은 주몽이 만든 고구려의 그것이다. 고구려의 건국이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대소왕자는 주인공 영웅과 상충하는 세계 질서에 순응하는 적대적인 의붓형제가 되는 것이다. 의붓형제이되 말 그대로 영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영웅으로서의 안티히어로다. 게다가 주몽이 동부여의 체제 속에 머무른다면 대소는 금와왕 다음 세대의 질서를 주도할 수 없다. 다음 세대의 질서를 주도하는 영웅이 둘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소는 주몽에게 직접적인 분리와 이주, 고난과 시련이라는 트라우마의 원인을 제공하는 의붓형제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의붓형제가 영웅에게 주는 트라우마는 부모 트라우마의 파생물이다. 주몽은 이 의붓형제가 가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이 중심이 된 체제를 구축해 새로운 질서를 주도하는 부모가 됨으로써 부모 트라우마를 해결한다고 할 수 있다. 형제 트라우마와 부모 트라우마는 순환적인 구조가 되는 것이다. 드라마 <주몽>에서도 이러한 서사원형의 형제 트라우마 구현 양상은 그대로 수용되어 있다.


영웅소설적 영웅서사는 좀 다르다. 남의 부모가 만들고 주도하는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남의 부모의 자식이 바로 영웅과 대결하는 형제다. 일종의 의사형제(擬似兄弟)가 된다. 남의 부모의 자식이지만 세계의 질서에 대응하는 이념이 주인공 영웅과 다를 뿐이다. 이전 세대의 질서를 주도하는 영웅의 자식이거나 그 체제에 순응하는 남의 부모의 자식으로, 다른 이념의 세계관 속에서 보자면 영웅이 될 수 있다. 단지 해당 작품이나 유형을 향유하는 작가와 독자층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신화적 영웅서사를 매체에 얹어 영웅소설적으로 재생산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주몽신화>의 의붓형제가 영웅소설의 의사형제로 대체돼 있다. 그러나 표면상이다. 정기준은 남의 부모의 자식으로 영웅인 나와 대결하는 의사형제이면서도 이념적인 혈연성을 공유하고 있는 영웅인 나의 클론에 가깝다. 정기준의 백부인 정도전은 남의 부모이면서도 내 부모의 왕권전제주의에 반대하는 민주적 의론주의를 심어준 이념적인 부모다. 동시에 민주적인 의론주의를 신권전제로 할 것이냐 왕의 주도하에 민권자율로 할 것이냐에 따라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남의 부모이기도 하다.


정기준은 신화적 영웅인 내 부모가 만든 현 질서를 해체하고 자신이 중심이 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한 이념적인 부모의 정치적 자식이라는 점에서 이념적인 의붓형제다. 새 질서 창안이라는 세종과 같은 신화적 영웅의 원형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질서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이념적 지향에서 세종과 다른 길을 고르는 바람에 시대적 의지의 방향성에서 선택을 받지 못하고 실패한 의사형제이기도 하다. 애초에 정기준의 신화적인 능력은 세종을 압도하기까지 한다. 대신, 정기준은 대결의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세종이 민본조선(民本朝鮮)의 이념을 확립하도록 이끄는 의사형제이기도 하다.


군사적인 왕권독재 대신에 새로운 위민(爲民)의 이념을 다른 방향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정기준의 신념과 의지는 그의 능력이 신출귀몰하고 타인에 대해 설득력이 있을수록 세종에게는 더욱 커다란 트라우마가 된다. 세종은 애초에 자신을 압도하던 정기준이 가하는 압박에 대항하고 그가 던지는 수수께끼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념적 질서를 완성해 나간다. 의사형제가 준 트라우마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 곧 부모 트라우마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민중적 영웅서사의 대표격인 아기장수서사원형에서는 원칙적으로 내 형제에 의한 형제 트라우마는 없다. 주인공 영웅을 패배시키는 의사형제들은 모두 남의 부모가 만든 질서에 순응하는 남의 부모의 자식들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들의 대부분이 처음에는 주인공 영웅인 나와 이념을 공유하는 친지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남의 부모의 자식인 의사형제들보다 훨씬 친형제들에 근접해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나와 공유하던 이념을 바꾸어 주인공을 배신하며, 주인공 영웅을 죽이고자 하는 내 부모의 살의와 이념의 방향성을 공유한다는 데서 비극성이 증폭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기장수서사원형을 미디어소설로 재생산한 <각시탈>의 경우는 양상이 보다 복잡하다.


일단, 1대 각시탈인 이강산을 패배시키는 것은 자신의 친형제인 이강토로, 아기장수서사원형의 형제관계를 친형제의 그것으로 변형시켰다. 이강토는 남의 부모들의 집합체인 일제가 만든 친일이념을 내면화 한 수호자로, 일제강점기 아기장수인 1대 각시탈과 세계의 이념을 달리하는 남의 부모의 자식들과 집단적으로 연대해 있다. 그런데 이강토는 자신이 내면화 한 친일의 이념이 친형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형제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친일의 이념을 버리고 친형의 항일 이념을 받아들임으로써 2대 각시탈이 된다.


친형을 죽인 친일의 이념은 항일의 이념을 수호하던 친부모를 죽인 남의 부모·형제들의 이념과도 같은 맥락에 있다는 점에서, 부모 트라우마가 형제 트라우마로 전이되는 아기장수서사원형의 가족관계 중심의 서사코드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대신 아기장수로 각성한 2대 각시탈 이강토는 남의 부모의 자식들인 키무라 형제들과 대결하게 되는데, 이들 형제 중 동생은 이강토와 혈육과도 같은 의사형제관계를 맺고 있던 존재였다는 점에서 친지가 배신의 적대자가 되는 아기장수서사원형의 서사코드 내부에 있다. 게다가 이들 적대자 형제들은 친일의 세계질서 속에서는 민족적 영웅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아기장수 이강토와 세계질서의 이념만 달리할 뿐인 반-영웅성을 지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