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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여, 낮은 곳에 눈 맞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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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여, 낮은 곳에 눈 맞춰라
  • 김수현 사무처장(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 승인 2014.09.0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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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루 세종 | 세월호특별법 제정과 한가위

유민아빠’ 마녀사냥식 신상털기, 한국사회 야만성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없다’는 교황말씀 큰 울림
정치·이성 동반 추락, 인간에 대한 성찰 우선돼야


한가위다. 결실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그러나 한가위를 보내는 우리들의 마음은 편안하지가 않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의 신뢰는 처참히 무너졌다. 정치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권력투쟁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현실세계에서의 정치는 더욱 비정하고 가혹하기만 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 억울하고 상처받은 이웃들을 포용하는 따뜻한 정치는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단정이 섣부르게 드는 요즈음이다. 휴머니즘이 들어설 여지가 전혀 없고, 차갑고 날카로운 공격의 칼날만이 나라 전체를 횡행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의 방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남긴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는 말씀은 그래서 더욱 울림이 클 수밖에 없다. 교황에게는 어떠한 권위와 격식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소외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했고, 가슴으로 대화하고 공감하려 했다. 범인(凡人)으로서 처한 인간의 실존적 문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처한 분단의 현실까지, 늘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기도했다. 종교적·이념적 차이까지 존중하려 했고 포용하려 했다.


특히 세월호에 대한 교황의 인식은 확고했다. 입국하는 순간 세월호 가족을 만나면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고통을 공감한 것은 그 어떤 정치적 행위로도 규명할 수 없는 묵시적 울림이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도, 광화문에서도, 명당성당에서도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 앞에 스스로를 내리고 가장 낮은 곳의 처절한 고통을 함께 짊어지려 했다.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을 진심으로 만났다고 해서 정치적 행위로 규정한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종교의 차이, 정치적 차이를 떠나 모두가 공감했고, 언론까지도 진보와 보수를 떠나 교황이 몸소 실천하며 던져준 우리 시대의 과제에 대해 성찰했다. 영혼의 힘, 진정성의 힘, 현장의 힘도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 즉 휴머니즘에서 비롯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모티브로 한 영화 <명랑>이 최고의 흥행기록을 경신하며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대기업이 제작과 배급을 맡고 있어 영화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고, ‘이야기의 힘’ 보다는 ‘영상의 힘’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영화에 대한 인기라기보다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인기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듯싶다. ‘사즉생(死則生)’으로 조선을 지키고 백성의 마음을 얻었으나, 장수와 인간의 갈림길에서 고통 받고 결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순신의 고뇌는 우리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도자들도 결국은 나약한 실존적 존재일 수밖에 없으나, 리더십의 출발은 백성이 되어야 하고, 백성을 향하는 마음이 지도자의 운명이자 사명이란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두고 유가족과 정치권 사이에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45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을 감행했고, 세월호 유가족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며 풍찬노숙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도 농성장을 설치하고 릴레이 단식을 진행하는 등 청와대와 정치권의 관용과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낯부끄럽고 슬픈 자화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눈물의 담화를 통해 “진상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기는커녕 김영오씨를 비롯한 유가족의 의사를 철저하게 냉대하고 있다. 정치권은 세월호특별법 제정 등을 포함한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채 7, 8월 임시국회를 방치하고 있다. 무능 정치의 전형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에 정치만 실종된 게 아니다. 이성 또한 실종되고 있다.


일부 언론과 누리꾼들은 김영오 씨가 이혼했다는 등의 이유로 아빠 자격을 문제 삼으며 본질을 악의적으로 호도했다. 월 3만원 회비의 국궁 취미를 귀족 스포츠로 왜곡하고, 심지어 주치의에 대한 국정원 사찰까지 제기되는 등 김영오 씨에 대한 신상털기가 마녀사냥에 가까웠다. 결국 딸들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와 양육비 통장 사본까지 공개하는 비극적 형국에 이르렀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 대한 명백한 폭력이다. 극에 달한 한국사회의 야만성이다.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이 국회 본연의 역할이고,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은 삼권분립 정신에 위배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부총리 등이 연일 국회를 압박하며 19개의 ‘민생·경제법안’의 통과를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경제위기와 민생법안 처리 지연이 마치 세월호 참사와 세월호특별법 때문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진상규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도 없이 경기부양론을 부각시키며 세월호 문제를 희화화하는 것은 정치권의 전형적인 물 타기이자 유가족에 대한 2차적 폭력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여야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 구성도 ‘거부권’과 ‘의결권’을 지닌 입법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에 대한 입법권 침해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수사권과 기소권 보장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형사법상 ‘자력구제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란 또한 유가족이 형벌권을 직접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검사를 추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소지가 없다.


물론 법리적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와 이성이 동반 추락하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어떤 가치보다 우선되어야 할 시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순신 장군이 시대와 종교를 초월하여 왜 울림을 주고 있는지 성찰하자는 것이다. 상처받고 고통 받는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정치의 소임은 무엇인지 되묻자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세월호 문제는 대한민국의 영혼과 국격이 한 단계 성숙해지는 성찰적 기제가 될 수도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한다고 해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만큼 대한민국의 법치체계는 허술하지 않다.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 낮은 곳에 눈 맞추고 가슴으로 공감하는 정치를 기대해 본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의 관용과 결단을 촉구한다. 한가위다. 아마도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한가위 최고의 선물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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