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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한국사회에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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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한국사회에 남긴 것
  • 장수찬 교수(목원대 행정학과)
  • 승인 2014.08.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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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POLIS)이야기 |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란 리본’

세월호 기억 속에 묻어 두려는 한국 권력과 대조적
위안부 존재 인정 않으려는 일본 수상 태도와 반대
겸손·공감·소통, 한국정치 엘리트가 배워야 할 미덕


교황 프란치스코의 노란 리본에 한국인들은 왜 진정한 위로와 치유를 받는가? 바티칸의 영주요, 세계 가톨릭교회의 아버지(papa)이고, 사도(師徒)의 왕인 교황이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을 만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노란 리본을 달고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에 대한 그의 공감 능력은 오늘날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몇 가지 점에서 전통적 교회적 권위를 이탈하고 있다. 우선은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고, 제수이트(Jesuit, 예수교) 교회 출신의 교황이다. 교황 직에 선출되면 교황 명칭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데,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int Francis of Assisi)를 기념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사제로 서품을 받은 적이 없지만 교회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거대한 실크 상인(商人)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소수자들을 위한 사업을 했다. 따라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 되겠다는 교황의 미션을 상징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겸손한 자세로 신념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대화를 주선함으로써 평화를 만드는 사도로도 유명하다. 그는 교황지위를 다르게 해석하고 접근한다. 그는 전직 교황처럼 교황궁(敎皇宮)에 살지 않고, 토마스 마태 게스트하우스에 살고 있다. 화려한 장식의 제례복(祭禮服)을 입기 보다는 간단한 흰색 사제복을 입는다. 그가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도 황제(皇帝)적 장식의 십자가가 아닌 사제직에 서품되면서 걸어왔던 오래된 십자가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왼쪽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모양 배지였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던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 600명은 교황의 전격적인 배려로 참석이 가능했다.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 유족에게 교황은 직접 세례를 주었다. 교황은 바티칸의 궁극적 권위이면서 세계교회의 최고 권좌에 있으면서도 세월호 유가족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 한국의 권력자들이 세월호를 기억 속에 묻어 두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교황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도 접견했다. 일본 수상이 그들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와는 정반대였다.


교회는 본래 ‘치유’ ‘위로’ ‘응원’의 제도와 기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정치는 원래 현실, 권력, 갈등, 혹은 욕망의 전차라고 정의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나 정치는 원래 한 몸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교회가 정치로 부터 분리되어 나왔지만, 교회나 정치가 다뤄야 할 주제는 사람(people)이다. 정치가 인간중심주의 철학을 잃어 버렸을 때, 정치는 치유와 위로가 아니라 권력을 확대하고 유지하기 위한 전장(戰場)이 될 수밖에 없다. 가톨릭교회도 늘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도로서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합리주의적 진화를 방해했고, 과학을 후퇴시켰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속여 현실을 인내하라고 가르쳤다.


교회제도나 정치제도는 본래적 기능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초대교회 시대에 교황은 세속적 권위나 권력을 갖지 않았다. 세계 가톨릭교회 본부는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한 로마에 세워졌다. 인간들을 위한 봉사와 순교적 정신위에 교회 본부가 세워졌다. 그러나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교황은 지구상의 최고 권력자로 둔갑했었다. 근대 이후에 교황은 세속적 권력을 내려놓고 정신적 지주로 전환했다. 교회제도를, 정치제도를 어떤 철학을 가진 인물이 책임지느냐는 대단히 중요해 보인다. 교황이 보여준 겸손함, 공감능력, 그리고 소통능력은 한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가장 시급히 배워야 할 미덕이다. 교황의 치유와 위로에 다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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