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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있는 위정자 뽑는 선거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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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있는 위정자 뽑는 선거돼야
  • 박지영(시인, 계간문학마당 편집장)
  • 승인 2014.05.26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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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답하지 못하는 사회
박지영
박지영

‘아나키즘’은 모든 정치적인 권력 따위를 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이를 전파하고 실현하려는 운동이다. ‘무’와 지배자·통치자가 합성된 고대 그리스어 아나르코스에서 비롯된 말이다. 무정부주의라고 불리지만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이런 표현을 사용하기 꺼려한다.

아나키즘 또는 자유연합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 역사에서는 고대의 공동체를 비롯해 고대의 철학·사상에서도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의 폐해에 대한 반발로 공산주의·사회주의와 함께 발흥했다. 페미니즘, 펑크문화 등과도 관련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포용하는 중용이념으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 본인의 생각으로는 조금 되짚어 볼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은 현실에 대한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해 공영방송이나 재난 방송을 믿지 않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심지어는 등대와 VTS도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정부와 청와대에 대해 침묵의 걸음이 시작되었고, 누구는 ‘국민이여 분노하라’며 선동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차가운 파도아래 그들이 있는데 SNS를 접하는 뉴스와 성금 모금은 관행처럼 자리를 잡아 우리를 슬프게 만들었다. 진실성의 족적이 역사에 기록될 것임을 잊은 행태가 난무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정말이지 작금의 실태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총체적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아이의 질문에 눈을 맞추고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맞추며 질문에 답을 하고, 내가 모를 때는 같이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시민의식이고 가족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행태를 보자면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는 묻는 질문에 답을 할 자신이 없다.

재난이 올 때마다 제사장과 군장이 하나이던 원시 부족의 행태와는 달리 슬프게도 위정자는 자신의 변명 꺼리를 찾고 담당자는 담당자대로 자신의 피접할 곳을 찾는다. 국민은 세금을 열심히 내고도 물을 곳이 없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노여워 분을 풀지 못하는데 정부는 울어주는 곡비(哭婢)하나 불러다 위령제 지내듯 한다. 울고 나면 잠잠해지는 현실을 보며 무지 몽매함에 참담하다.

지식과 철학을 가진 이들이 말하지 못하고 전공을 이수하고 강단에 서서 수없는 전문가들을 가르치던 전문가 누구도 나서서 말을 못하는 국가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무주공산에 우는 소쩍새처럼 이제는 혹세무민의 괴담과 민담이 난무하며 위정자는 설 곳을 잃을지도 모른다. 언로가 의심받는 나라는 담론이 없다. 발전도 없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아이들은 체게바라처럼 자기혁명에 몰입할지 모른다.

그러기 전에 6·4지방선거는 좀 더 진실성 있는 위정자를 선택 하는 게 마땅하다. 합리적인 사고와 경험을 가진 이가 선출되기를 바랄 뿐이다. 의성 화타가 말한 것처럼 뼛속까지 병이 깊어지기 전에 침과 탕약만으로 치료가 가능할 수 있는 시절이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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