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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더 투명하고 정직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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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더 투명하고 정직해질까?
  • 장수찬(교수, 목원대 행정학과)
  • 승인 2014.05.27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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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이야기 |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운동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아파트 1단계 중앙공원에 내걸린 세월호 추모 현수막. 자본과 권력의 거미줄 같이 얽힌 공모관계가 세월호 사고로 그 민낯을 드러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운동이 실질적인 정치참여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촛불시위처럼 일시적인 폭발에 그칠 것이다. 부패구조의 해체는 자본과 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견제, 도전이 있어야 가능하다.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아파트 1단계 중앙공원에 내걸린 세월호 추모 현수막. 자본과 권력의 거미줄 같이 얽힌 공모관계가 세월호 사고로 그 민낯을 드러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운동이 실질적인 정치참여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촛불시위처럼 일시적인 폭발에 그칠 것이다. 부패구조의 해체는 자본과 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견제, 도전이 있어야 가능하다.
장수찬 교수
장수찬 교수

세월호 통해 거미줄 같은 공모관계 민낯 드러나

정치참여 이어지지 못하면 일시적 촛불시위 그쳐

부패구조 해체, 자본·권력에 대한 시민 도전 있어야

세월호 4층 객실에 있던 학생들의 생존율은 3층, 4층, 5층 객실을 통틀어 가장 낮은 23%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대로 가만히 있었던 4층 학생들의 생존율은 아래층(3층)의 생존율 70%보다 훨씬 낮았다. 3층 일반인 108명은 탈출하기에 가장 불리한 맨 아래층에 있었지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믿지 않고 신속하게 탈출했다. 공자(孔子)식으로 애기하면 순천자(順天者)들은 죽고 역천자(逆天者)들이 살아남았다. 세월호에서는 공자의 명심보감 첫 장 일절("순천자는 흥(興)하고 역천자는 망(芒)이라")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됐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운동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즉 우리사회 엘리트들에 대한 도전이다. 아이들을 시커먼 바다에 수장시킨 시민들의 개인적 고백과 회한이 사회적 촛불로 진화하고 있다. 사회적 촛불이 태워버려야 하는 것은 한국사회 엘리트들의 부정의(不正義), 부패, 공모관계(collusion), 비정상성(irregularity) 등등이다. 세월호를 통해서 청해진 해운(자본가)-해운조합-해운선급-해양경찰-해양수산부 사이의 공모관계가 맨 낯을 드러냈다. 평소에 선박심사와 안전운항 지침 등 안전관련 규정들을 감시해야 하는 자리를 해운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 채우고, 해경의 퇴직관료들이 해운조합에 관행처럼 자리를 차지했다. 해양 인허가 규제업무, 안전감독, 그리고 국가조달업무 과정에 자본가들의 돈맛이 바닷물처럼 배어있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촛불이 이러한 엘리트들의 공모관계를 해체시킬 수 있을 것인가? 수장된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속죄(贖罪)는 엘리트들의 검은 공모관계의 해체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른들의 속죄는 단언컨대 쉬운 목표가 아니다. 국제투명성기구 (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한국의 부패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 2013년)는 조사된 179개 국가들 중에서 100점 만점에 55점을 얻어 46위에 랭크되었다. 한국 경제력에 비해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부패구조를 해체시키는 것은 시민들의 자본과 권력에 대한 감시, 견제, 그리고 도전이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운동이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속죄가 되기 위해서는 운동의 지속성을 가져야 하고 폭넓은 대중적 공감을 얻어야 한다.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엘리트들에 대한 도전이다. 탈근대 사회에서 엘리트들에 대한 도전형(型) 정치참여는 보이콧, 청원, 서명운동, 평화적 시위, 신문 및 인터넷 기고, 캠페인, 불매운동 등이 있다. 시민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자 한다. 탈근대 사회에서 전통적 정치참여(투표, 정당참여)는 줄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정치참여는 오히려 늘 것으로 예견된다.

기본적으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운동이 구체적이고 제도화된 정치참여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운동은 기존의 촛불시위와 마찬가지로 일시적 정치적 불만의 폭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의 질은 정치적으로 자각된 시민들의 엘리트들에 대한 도전적 참여를 통해 향상된다.

독일 벨테스만 재단(Bertelsmann Stiftung)이 발표한 지속발전 가능한 거버넌스 지수(Sustainable Governance Indicators, 2014년)에 나타난 한국의 민주주의의 질(quality of democracy)은 10점 만점에 5.6점을 받아서 조사된 OECD 국가들 중에서 36위에 랭크되었다. 효과적 민주주의(Effective Democracy)는 민주주의가 엘리트들의 부패를 통제할 수 있어서 사회가 투명해지는 수준을 측정한다. 간단히 말해서 민주주의의 질과 부패수준은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국제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가장 투명하고 부패가 적은 사회인 뉴질랜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네덜란드 등이 민주주의 질에서도 가장 앞서고 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운동이 정부불만에 대한 일시적 정치적 카타르시스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엘리트들의 공모관계를 해체시키는 항시적 운동이 되어야 한다. 엘리트들의 부패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엘리트들에 도전하는 시민적 행동이 지속적으로 조직되고, 조직화된 시민적 행동들이 제도개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운동은 정치권을 분주하게 만들고 있고 선언적 수준에서나마 대통령의 양보를 얻어 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운동이 한국사회를 좀 더 투명하고 정직한 사회로 나아가는 정치적 모멘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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