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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 왜곡하는 여론조작, 민주주의 ‘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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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 왜곡하는 여론조작, 민주주의 ‘난적’
  • 김재중 기자
  • 승인 2014.08.06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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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기자의 뉴스리뷰 | ‘여론조사 조작의혹’ 취재 실패기

‘전화방’ 잠복취재, 알고 보니 기획부동산
그럼에도 불구, 여론조사 조작 정황은 충분
연이은 고발·압수수색, 무풍지대 있을까?

지난달 말, 세종시 조치원읍 외곽의 허름한 3층 건물 건너편. 본보 취재진은 회사 로고가 크게 새겨진 업무차량이 아닌 개인차량 안에 앉아 300㎜ 고해상도 카메라 망원렌즈를 통해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40∼50대 여성 20여 명이 여러 대의 승합차에서 내려 어두컴컴한 건물 안으로 연신 발걸음을 옮겼다.

‘찰칵 찰칵.’ 반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창문마다 블라인드가 내려 진 건물 안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중년 남성들이 무언가를 경계하듯 주변을 살폈다. 취재진은 자세를 한껏 웅크렸다. 응시하고 있는 그곳이 여론조사 조작을 위해 속칭 ‘전화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터라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건물에 단기 계약한 전화 수 십 회선이 한꺼번에 설치됐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여론조사 조작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곳이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날 본보의 잠복취재(?)는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취재 과정에서 이미 해당 장소가 당국의 의심을 샀던 장소였고, 조사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전화기 수십 대가 설치되고 중년 여성들이 쉴 새 없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통화내용은 "좋은 땅이 있다"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책상 위에는 고객을 상대하는 ‘매뉴얼 북’까지 놓여 있었다. 그저 평범한 기획부동산 사무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역 정치권 상당수 인사들은 "여론조사 조작은 분명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널뛰듯 등락하는 후보들의 지지율, 언론사별 조사결과에서 나타나는 현격한 차이, 과거 실제 투표성향과 정반대로 표출되는 연령·지역별 후보 선호도 등. "여론조사 결과를 믿으면 바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여론조사 결과 믿으면 바보"

사실 본보가 ‘여론조사 조작 의혹’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올해부터 외부 기관에 여론조사를 의뢰하지 않고 부설 연구소를 설립해 자체조사에 나선 것도 의심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 초 본보는 조사의 신뢰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국내 메이저급 여론조사기관과 업무제휴를 추진한 바 있다.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믿을 수 있는 파트너와 함께 일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소위 ‘여론조사 1군 업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표본이 작으니 가지고 있는 표본을 넘겨 달라"는 것이었다. 무의미한 제안이었다. 특정 전화번호를 표본으로 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다 유수 조사기관이 조사결과의 신뢰도보다 ARS 조사의 응답률을 높이겠다며 효율성만 따지고 드는 모습이었다.

이후 선거전이 본격화되자 여지없이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가 봇물처럼 이어졌다. 본보도 마찬가지 였다. 지금까지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총 다섯 차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2차 조사에서는 본보 스스로도 확신하기 어려운 결과가 도출돼, 스스로 검증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가감 없이 공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당신들이 직접 수행한 여론조사결과를 얼마나 신뢰하느냐"고 질문해 온다면 "100%"라고 답하기 어렵다. ‘조직’적 ‘조작’세력의 존재여부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ARS조사 최대 맹점은 착신전환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이 여론조사 조작의혹으로 들끓고 있다. 일찌감치 상향식공천제를 도입한 새누리당의 경우 여론조사 결과를 경선에 대폭 반영하면서 훨씬 더 큰 내홍을 겪고 있는 중이다.

포항과 경주, 파주 등에서 이미 여론조사 조작에 나선 정황이 포착되면서 경찰 압수수색이 이뤄지거나 선관위 고발이 이어졌다.

경북선관위는 지난달 15일 170개의 유선전화 회선을 개설해 이를 착신전환하는 방법으로 공천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조작한 새누리당 예비후보자 등 15명을 대구지검 포항지청에 고발했다.

경주에서도 조직적인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시장 후보선출을 위한 새누리당 내 컷오프 조사에서 인터넷전화 86회선을 신설해 자신이 일하는 매장으로 연결한 뒤 특정 후보 지지활동을 한 이모 씨 등 4명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파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 지역신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지인의 사무실과 업소에 전화 50대를 설치하고 착신전환한 새누리당 시장 예비후보의 사무실을 지난 1일 경찰이 압수수색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전화면접 방식이 주를 이뤘으나 군소업체가 우후죽순 난립하고 각 정당이 비용문제로 저가 경쟁입찰제를 도입하면서 비용이 적게 드는 ARS 여론조사가 급증했다"며 "ARS 조사의 최대 맹점은 착신 등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조직적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문가는 또 "ARS 응답자는 상대적으로 노인층이 많은데 젊은 층 의견을 보정하기 위해 가중치를 두면서 왜곡이 손쉽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중 기자 jjki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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