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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사랑, 가짜 재산으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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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사랑, 가짜 재산으로부터의 자유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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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멍청한’ 부자들을 조롱하는 방법들을 총천연색 파노라마로 적나라하게 펼쳐 보여준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멍청한’ 부자들을 조롱하는 방법들을 총천연색 파노라마로 적나라하게 펼쳐 보여준다.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야유

현실세계에서는 절대 금지사항으로 통하는 것이 영화에서는 가장 뜨거운 열망의 도가니로 변한다. 상식은 인간에게 하나의 사랑을 영원히 지키라고 명령하지만 영화는 그런 사랑이 진짜 사랑이냐고 자문하게 만든다. 당신의 지금 사랑이 가짜라면 영혼의 사랑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가짜 사랑의 숲을 헤쳐가라고 속삭인다. 현실 속 외사랑에 갑갑증을 느끼는 애정의 고행자들은 극장에서나마 카사노바 같은 해방감을 누린다. 그만큼 영화는 금지로부터의 쾌락에 자유롭다.

해방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2014 신년 초에 개봉했지만 미안하게도 명품도시 세종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명품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마틴 스코시즈 연출)를 소개해야겠다. 미국의 억대부자들이 모여들어 온 세상 돈 줄기를 쥐락펴락하는, 가히 그 지경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천문학적 부의 심장으로 상징되는 월스트리트(Wall Street). 이곳을 무대로 늑대(=개) 같이 불법, 탈법 물불 안 가리고 돈을 긁어모아 그악스러운 성공을 거머쥔 한 ‘사기 충만’ 증권브로커가 영화의 중심인물이다. 언뜻 경제사회의 허상을 꿰뚫어내는 의미심장한 영화적 체험이 예상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한 전폭적이고도 신랄한 풍자와 야유로 가득하다.

어렵게 이야기하지 말고 쉽게 이야기하자. 내가 만일 가난하게 살고 있고 단지 가진 것이라고는 명석한 두뇌와 섬세한 감각뿐이라면, 게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상적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고 그저 몸만이라도 부자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만 그마저 한 톨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 울분에 찬 갑갑증을 어떻게 풀 것인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일단 되는 대로 재수 없어 보이는 부자 하나를 잡아다가 분이 풀릴 때까지 개 패듯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건 현실사회에서는 쉽게 범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방법으로 부자들을 조롱하며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좀 덜 위험하니 진짜로 명석한 두뇌와 섬세한 감각을 활용해볼 만하다. 이때 영화가 하나의 좋은 매개체가 돼줄 수 있다. 영화를 통해 조롱의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부자들, 아니 수식어를 덧붙여 ‘멍청한’ 부자들을 조롱하는 방법들의 총천연색 파노라마를 적나라하게 까발려 보여준다는 것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대한 나의 평의 핵심이다. 이 영화에서 속 시원하게 부자들을 짓뭉개며 통렬한 희열감을 느끼도록 하는 장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드러나 있고 하나는 숨어있다.

그중 드러나 있는 한 가지는 부자가 돼서도 누리지 못하는 극단의 쾌락을 전시하는 것. 기업 가치를 뻥튀기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증권브로커 조단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사기감각으로 엄청난 돈을 벌게 되자 마약, 섹스, 초호화판 파티로 흥청망청 돈을 흩뿌리며 방탕을 즐긴다. 영화는 그가 누리는 쾌락을 아주 풍성하고 자세하게 낱낱이 보여준다.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그의 회사를 난잡한 매음굴이 되도록 만드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부자들은 돈을 아끼는 사람들이다. 아무데나 돈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쾌락을 위해 돈을 물 쓰듯 쓰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돈을 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단 벨포트는 돈을 굳이 아끼려고 하지 않는다. 벌어들였으니 하고 싶은 대로 환락의 세계에 첨벙 빠져든다. 너희들은 돈 있어도 요렇게 못하지? 용용 죽겠지? 그런 태도다.

부자를 조롱하는 숨어있는 다른 한 가지는 조단의 투자설득 전화 통화에 그 단서가 담겨있다. 영화에는 조단에게 설득당하는 주식투자자들의 모습이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그는 단 한 번도 면대면 계약협의를 이끌어내지 않는다. 오로지 전화를 통해서만, 그러니까 완전히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돈을 좀 더 끌어 모으고 싶은 부자들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그런데 이것이 조롱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조단이 ‘음탕한 낚시꾼’의 태도를 보여주는 데에 있다. 아무런 합리적 근거도 검토해보지 않은 채 마치 신뢰할 만한 오랜 거래자처럼 느끼게 하는 브로커의 달착지근한 목소리에 홀딱 넘어가는 투자자의 전화선 바깥에서 조단과 그의 동료들이 쾌재를 부르며 박장대소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 투자자가 말 몇 마디에 결국 낚였네. 이 멍청한 투자자는 또 얼마나 행복한 상상을 하고 돈을 뜯길까. 뭐 이런 고소함이 조단의 미소 속에 풍겨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조단은 머리 빈 투자자들의 돈을 긁어모아 온갖 쾌락에 낭비해도 아깝지 않은 공짜 재산을 축적하게 됐으니 아무렇게나 써도 아까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돈으로부터의 해방감, 아무리 부자여도 누릴 수 없는 헛된 돈의 쾌락을 전시하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부자들은 질투와 모멸감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당신은 한번쯤 이 영화를 통해 가짜 사랑, 가짜 재산으로부터의 자유를 흠뻑 느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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