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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생물학 역사 송두리째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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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생물학 역사 송두리째 바꾸다
  • 세종포스트
  • 승인 2014.01.0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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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초파리’
‘초파리’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펴냄 | 1만4000원
‘초파리’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펴냄 | 1만4000원

조그맣고 습성도 까다롭지 않아 기르는 데 비용이 얼마 들지 않는다. 500㎖ 크기의 우유병에 썩어가는 바나나 한 조각만 있어도 200마리가 2주일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암컷 한 마리가 알을 수백 개나 낳기 때문에 번식도 쉽다. 게다가 태어나 생식하고 죽기까지 몇 주일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한 세대가 사는 시간도 짧다. 바로 초파리 얘기다.

사람들에게 초파리는 쓰레기장을 떠돌아다니는, 더럽고 미천해서 눈에 띄면 바로 눌러 죽여야 할 작은 벌레로 취급 받는다. 그런데 포도씨 반쪽보다 작은 이 생명체는 생물학의 실험 재료로 쓰인 수많은 작은 벌레들 가운데 단연 유용한 존재로 꼽힌다. 찰스 다윈이 제시한 자연선택설의 실질적인 증거를 발견하고 그레고르 멘델의 완두콩 유전법칙을 증명하는 데 기여했다. 최초로 완성된 유전자 지도 또한 초파리의 것이었다. 알코올·마약 중독, 수면 장애,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 암 치료법 등을 찾는 연구에도 초파리의 도움이 컸다. 하나의 미천한 생물이 20세기 생물학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초파리를 빼놓고 생물학을 논하지 말라는 얘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적인 실험동물이었던 개와 생쥐, 토끼 등에 밀려나 있던 초파리는 20세기에 미국 하버드대 윌리엄 캐슬 교수의 실험실에서 처음 데뷔했다. 이어 ‘초파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머스 모건 미 컬럼비아대 교수에 의해서 초파리 연구가 활짝 꽃을 피웠다. ‘짧고 굵게 사는’ 초파리의 매력이 실험 실습에 큰 영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초파리의 재발견은 기초 유전학뿐만 아니라 발생유전학, 진화유전학으로까지 이어졌다. 지금까지 초파리 논문은 10만여 편이 나왔고, 지금도 매일 새로운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진화생물학자인 저자 마틴 브룩스는 이처럼 지난 100여 년 동안 실험동물로 살아온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인 초파리의 연구사를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런던, 러시아 등 세계 곳곳의 연구실을 배경으로 그려나간다. 초파리를 생물학계의 총아로 만든 모터스 모건의 연구, 초파리 애호가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가 진화유전학을 탄생시킨 이야기, 자손을 남기기 위한 초파리 암수의 치열한 경쟁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다.

초파리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한 쌍의 초파리는 2주 만에 새끼를 약 200만 마리나 쉽게 낳을 수 있다. 만약 이 각각의 초파리와 그 모든 후손이 계속 이런 식으로 번식한다면, 1년 뒤에는 1000 × 1조 × 1조 × 1조 × 1조 × 1조 마리의 초파리가 생길 것"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 책은 마치 초파리가 주연이고 과학자들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한 편의 소설 같다.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유쾌한 문장과 에피소드들로 꾸며져 있어 특별히 깊은 생물 지식이 없어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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