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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옥고 치르고도 환하게 웃던 ‘聖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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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옥고 치르고도 환하게 웃던 ‘聖人’
  • 정병조(철학박사, 금강대 총장)
  • 승인 2014.08.06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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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 내 마음의 스승, 만델라

얼굴표정에 과거 행적, 마음상태 드러나
우리 정치인 ‘교만한 얼굴’ 민망할 지경
유머 사라진 정치판에 타협·상생 없어
내가 바뀌어야 세상 바뀌는 법 알아야

2013년을 장식한 최대의 화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이었다. 세계 90여 개국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20만 명이 넘는 추모객이 줄을 이었다.

나는 그 흑인 아저씨를 만난 적도 없고 먼발치에서 바라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어느 성인 못지않게 내 마음속에 깊숙이 각인(刻印)되어 있다. 처음 그의 기사를 본 것은 27년이 넘는 옥고를 치르고 출감하던 모습이었다. 자유를 향한 그의 의지도 높이 평가 되어야겠지만, 그 환하게 웃던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개 기나긴 옥고를 치른 이들의 공통된 표정은 울분과 적개심이다. 사람의 얼굴 표정은 숨길 수 없는 것이어서 과거의 행적도 비치고, 현재의 마음 상태도 상당히 드러내고 있다. 서양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표정 변화가 심하지 않다. 이른바 포커페이스, 희로애락을 표면에 내 세우지 않으려는 유교적 형식주의, 달관과 초탈(超脫)을 도인의 경지로 보았던 불교적 출세간(出世間)주의 등이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한국인의 초상은 늘 어둡고, 무뚝뚝하고, 덤덤한 것이 특징이다.

나는 사람들의 인상을 퍽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은 ‘밝은 표정’, 적극적인 자세, 악의 없는 웃음을 띤 얼굴 등이다. 반면에 싫어하는 모습은 ‘뻔뻔한 얼굴’, 교만한 모습, 멍청한 표정 등이다. 대체로 텔레비전 9시 뉴스에 자주 나오는 얼굴들은 교만한 모습뿐이다. 특히 정치인들,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의 교만함은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높아야 얼마나 높고, 알아야 얼마나 알겠는가.

공자는 정치를 ‘정야’(正也), 즉 ‘올바름’ 이라고 했다. 현대적으로 정치를 정의하면 ‘타협’이다. 즉 대화와 인내를 통해 ‘기브 앤 테이크’ (give & take)를 실현하는 테크닉이다. 그래서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고 설파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에는 협상대신 ‘투쟁’만이 있다. 전투적 자세로 국회에 있으려면, 자리를 잘 못 고른 것이다. 마땅히 전쟁터로 가는 것이 옳은 일이다. 서양인들은 꼭 중요한 모임이나 시정 연설을 할 때는 ‘농담’으로 시작하여 유머로 끝낸다. 서양 정치인들은 거의 개그맨 수준이다. 유머가 사라진 살벌한 정치판에 무슨 타협과 상생(相生)이 있겠는가.

그 후 만델라는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그 첫마디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백인집단에 대해 보복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하도 많이 들은 말이어서 정치적 수사(修辭)거니 여겼었다. 그러나 5년 동안 단 한 번도 그가 정치적 보복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연임 할 수 있었는데도 끝내 한 차례로 만족한다면서 물러나는 그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의 퇴임사는 또 한 번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다. "나는 이제 물러납니다. 내 고향 쿠누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릴 때 나를 키워준 고향의 풀, 바람, 바위들과 함께 내 삶을 마치겠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어느 아름다운 시 보다도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고 느꼈다. 그 후 잠잠하더니 또 해외토픽에 그의 모습이 실렸다. 60세 먹은 흑인 아주머니와 열렬히 연애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또한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기사 꺼리였다. 권력에서 자유로워지고, 형식과 권위에서 벗어난 참 자유의 모습을 느꼈다. 만년에 그는 외 손주를 교통사고로 잃는 등 인격적 고통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는 사람의 도리가 원한을 푸는 복수가 아니라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사람 사는데 왜 ‘열 받는 일’이 없겠는가. 그것을 바로잡는 일은 윗사람의 책임이지만, 성내고 소리 지르는 일이 능사여서는 안 된다. 남을 대할 때는 오뉴월의 훈풍처럼 다가서야 한다. 반면에 스스로에게는 추상과 같은 칼날로 다스려야 한다. 왜 세상과 싸우고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가.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법이다. 불가의 농담 한 마디. "무거운 절 옮기는 것 보다는 가벼운 스님 떠나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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