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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창작법은 침묵의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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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창작법은 침묵의 경청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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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 나의 2013 베스트 영화 5, 그리고 장률의 ‘풍경’

2013년도가 저물어가는 무렵, 언제나 그래왔듯이 여기저기서 올해의 베스트 영화목록들이 발표됐다. 상업영화들이야 어차피 매출 규모에 따라 순위를 따지게 될 것이다. 나름대로 공을 들여 만든 것들도 제법 있으련만 그런 성취들은 쏙 빠지고 상업영화라는 딱지 때문에 그 성과가 금액으로만 환원되는 것이 아쉬울 법하다. 애초에 돈 벌자고 시작한 것들이니 그것으로 족할 일이다.

예술적 탐미나 사회적 관심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영화들에 대해서는 사실 순위란 게 무용하다. 각각의 성취들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섰는지 살펴보면 그만이지 그걸 꼭 1위, 2위 등등을 붙여가며 마치 경합의 이벤트를 겪는 것처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베스트 5’나 ‘베스트 10’과 같은 방식의 영화목록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각기 다양하게 멋진 영화들을 어찌 한 줄에 나란히 세울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등수까지 매기면서 말이다.


올해 내가 본 적지 않은 편수의 영화들 중 나의 영화적 시선에 흥미로운 성찰의 논점을 제기해준 영화들을 골라보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려 한다. 무순으로 언뜻 떠오르는 5작품만 열거해보면, 레오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앤디·라나 워쇼스키와 톰 티크베어의 <클라우드 아틀라스>, 전규환의 <무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률의 <풍경>.

이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다. 안 보셨으면 추천 드리는 것이라 생각하시고 직접 관람하셨으면 좋겠다. 단, 여기서 올해 가장 뒤늦게 개봉한 <풍경>에 대해 짧게 소개를 해보기로 한다.

장률 감독은 일제강점기에 조부가 만주로 이주해 3대째 연변에 사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소설가 겸 중국문학 교수로 활동해왔다. 전혀 영화와는 관련 없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영화 창작을 하게 되는데 42세 되던 해인 2003년 <당시>로 데뷔해 점차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6편의 장편을 제작해왔고 올해 그의 첫 다큐멘터리 <풍경>을 선보였다.


<풍경>은 한국의 곳곳에서 생활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주노동자들을 초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면 흔히 포함되는 내레이션을 걷어내고 대신 현장의 건물 내외 부분, 골목, 마을, 비닐하우스 등등을 비교적 정적인 화면으로 이끌어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마음 속 울림에 귀 기울이도록 한다.

이주노동자의 인적 규모가 크고 나름 관련 정책을 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그들을 문제적 존재들로 그려내는 것이 현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이 다큐멘터리는 별다른 설명적 단서들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를 화면에 담는 이 영화의 착목(着目)은 어디에 있는가. 뜻밖에도 카메라가 인물들을 향하는 시각 그 자체에 놓여있다는 생각이다. 일정한 거리를 둔 어느 지점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살며 일하는 ‘풍경’이 눈 안에 가득 들어오게 된다.

나는 그것이 경청의 태도와 맞닿아있다고 본다. 그들의 악몽에 가까운 꿈 이야기를 듣는 순간의 정서가 그것을 잘 드러내준다. 말을 듣는 자는 오직 말을 듣기만 한다. 나는 이러한 침묵의 경청을 올해 막바지에 이르러 가장 흥미로운 창작법으로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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