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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함이 주는 의외의 축복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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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솔직히 요즘 너무 바쁘다. 어차피 생계와 사회봉사로 압축되는 생활이지만 가끔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때가 있지 않은가. 딱 요즘이 바로 그런 때다. 얼마나 바쁜지 심지어 바쁘다는 말을 내뱉을 틈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를 늦추지 않고 꼭 보아야 할 영화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챙겨보고 넘어간다. 영화 본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아니 오히려 돈을 더 쓰게 되는데 왜 이렇게 죽고 못 살 정도로 극장을 들락날락거리는지 나도 의아스럽다. 흠, 미쳤다고 할 밖에.

지난 주말 저녁에는 천안에 다녀왔다. 세종시에는 예술영화·독립영화전용관이 없기 때문에 그런 영화들을 보자면 가까이 대전이나 청주로 나들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KTX 천안아산역 부근에 CGV천안펜타포트점이 생겼고, 그 멀티플렉스극장의 한 상영관이 ‘무비콜라주’라는 브랜드의 예술영화·독립영화전용관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종시에서, 특히 조치원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밖에 안 떨어진 곳이다. 대전의 대전아트시네마와 청주의 롯데시네마 독립영화상영관에 가는 거리보다 가깝다.


처음 방문한 CGV천안펜타포트점의 예술영화·독립영화전용관은 비교적 스크린이 크고 좌석도 쾌적했다. ‘에라 잘 됐다’하며 그날 저녁 3회분의 영화들을 연달아 내리 관람했다. 장장 5시간 가까이 극장에서 사이사이 김밥과 토마토주스로 허기를 때우며 보고 싶던 영화들을 게걸스럽게 ‘흡입’했다. 자칭타칭 ‘잉여’라 불리는 젊은 세대의 자존감 드높이기 격투기대회가 벌어지는 <잉투기>(엄태화, 2013), 영화전공 대학생들의 무모하고도 대책 없는 유럽배낭여행 다큐멘터리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호재, 2013), 종교 사기꾼들에 의해 수몰지구 마을에 스며드는 지옥도를 인상 깊게 그린 애니메이션 <사이비>(연상호, 2013).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측면에서 제각각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 중에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에 대해 내가 받은 인상을 여기서 가볍게 첨언하고 싶다.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생 선후배 4명이 자기들 말로 ‘잉여생활’, 즉 세상살이 언저리에서 더 이상의 의욕도 없이 게으름만 피우는 생활을 하다가 뜬금없이 1년간의 유럽배낭여행을 해보기로 작당을 한다. 그러면 여비는 어떻게 충당하느냐. 참 ‘잉여인간스러운’ 발상에 기가 찼는데, 그 방법이란 뭔고 하니,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지 숙박업소 홍보영상을 만들어 돈을 마련하겠다는 것. 그들의 잡담을 듣고 있노라니 처음에는 실현가능성보다는 너무나 생활이 심심해서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는 젊은이들의 실없는 인생유랑쯤으로 여겼다.

역시 중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라 실행이다. 이들은 단돈 80만원과 카메라 1대를 들고 프랑스 파리 거리 한복판에 내려서게 된다. 홍보영상을 만들어줄 숙박업소를 수소문해보지만 누가 이들을 믿고 주문을 하겠는가. 고립무원의 도시에서 며칠 만에 완전 빈털터리가 된 이 잉여인간들은 온종일 걷고 차를 얻어타고 하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저 남쪽으로 가기를 반복한다. 으흐흐 그러면 그렇지 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젊음이 좋다지만 무턱대고 허황된 꿈을 좇아 몸을 혹사하는 이들이 불쌍해보였다.

그런데 웬걸! 이들은 결국 로마에서 가까스로 한 호스텔의 홍보영상을 만들고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린다. 모든 상황이 반전된 것. 거기서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내버렸던 하나의 행동양식이 성큼 다가섰다. 무모함의 정신이란 전혀 뜻밖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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