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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속에 깃든 삶의 또 다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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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속에 깃든 삶의 또 다른 지평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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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 '무게'

11월7일 개봉했지만 개봉관은 서울의 단 두 곳. 상영시간대도 일마치고 겨우 저녁시간에 한 번 정도 관람기회를 얻을 수밖에 없는 영화. 이 정도면 한해 2억 명 관객규모에 육박하는 엄청난 영화산업의 활황을 보여주는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홀대를 받는 작품인지 알 수 있다. 그런 대접을 받고 있지만 꿋꿋하게 관객을 만나고 있는 영화가 있다. 전규환 감독의 <무게>(2012)다. 상업적 무관심속에서 잃어버리고 있는 창작성의 지평을 몇 명 안 되는 눈 밝은 영화광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선보인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뭔가 눈요기를 찾는 관객들에게 때로는 선망의 대상으로, 때로는 극형을 받아 마땅한 악인으로 등장하는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아닌 게 아니라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의미심장하게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발상의 전환을 영화 <무게>는 시치미 뚝 떼고 사뭇 진지한 척 펼쳐 보여줬다.

이 영화의 주요 무대는 입관 의례를 준비하는 시체안치실이다. 관객의 눈길은 안치실 간이침대 위에 놓여있는 시체들을 정성껏 닦고 단정하게 꾸며 관속에 놓아주는 등 굽은 염장이 ‘꼽추’에게로 모아지지만 그건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던 습관 때문이다. 습관인 줄 모르고 습관처럼 바라보는 것이 습관의 속성일 것인데 영화는 그것이 습관이라고 단호하게 환기시킨다. 화면은 자주 전도된 방식으로 시체를 화면에 가득 채워 주는데, 마치 시체가 관객을 잡아 묶으려고 침묵 속에서나마, 그리고 정지자세에서나마 면밀히 눈길을 단속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여기서 전도됐다는 것은 관객이 스크린 속 시체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시체가 거꾸로 스크린 바깥의 관객을 지켜보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죽은 남자와 죽은 여자는 살아서 애증의 관계였고 바로 그 때문에 상대를 죽이고 자신도 죽음으로 몰았다. 송장이 돼 나란히 누운 지금의 모습은 아무 여한이 없이 편안하다. 기형으로 태어나 평생 헬멧을 쓰고 사는 살아있는 남자는 아들에 매여 평생을 한스럽게 살다 죽은 자기 어머니 앞에서 오열을 터뜨리다가 옆에 누운 죽은 여자를 강간한다. 죽은 여자는 덜컥덜컥 성욕에 꿈틀대는 몸이 움직이는 대로 물체처럼 움직일 뿐 반응이 없고 태연하다. 한마디로 외설에 무감하다. 그것은 관속에 누운 죽은 어머니의 표정을 닮은 것이다.

죽음을 외면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조롱하고 죽음을 학대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의미 없는 숱한 몸짓들이 삶에 대한 속박 속에 의미 없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꼽추의 시체안치실은 죽은 사람들로 가득한 활기찬 춤의 공간이 된다. 죽은 사람들은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온몸이 일그러지고 칼에 베이고 불에 그슬리고 차에 부서지고 높은데서 떨어져 조각났어도 어떤 흉측한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응시하며 죽은 사람들은 그들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 영화 <무게> 속에서는 마치 죽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환상을 대신 살아주는 것같이 느껴진다. 배제되고 격리돼 있던 죽음이 친근하고 애련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느슨하게 죽음의 부정성이 희석되는 이 순간 정색을 하고 자문을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죽음을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단한 삶의 몽환적인 출구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영화의 죽음에 대한 판타지를 옹호하고 싶다. 죽은 사람들이 최종의 순간에 선택한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과정을 낱낱이 드러내 보여주는 영화의 세심함을 믿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그 무엇. 영화 <무게>는 한국영화가 잃어버리고 있는 한 지평을 거기서 되살려내고 있다고 짚어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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