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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위로 위해 우주 소비하는 이런 낭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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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위로 위해 우주 소비하는 이런 낭비라니!
  • 세종포스트
  • 승인 2016.05.2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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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 그래비티

어차피 속는 줄 알고 멀티플렉스극장을 찾았다. 직접 관람하지 않아도, 꼭 내용을 살펴보지 않아도, 대강의 기본적인 상영정보만을 훑어봐도 미국 할리우드 발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의 수준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2013)에 대해 어떤 섬세한 감수성이 있어 보이는 나름 영화광이 감동했다고, 감격했다고, 아름답다고 연발 탄성을 질러대기에 왜 저 사람이 그렇게 알뜰하게 속아넘어갔는지 궁금해서 극장에 찾아간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유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보는 특별한 사람이지.

영화 <그래비티>는 내 눈에는 그저 지구 바깥 무중력 상태에서의 색다른 체험을 자기 위로의 서사 방식으로 풀어간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킬링타임’ 오락영화다. 여기서 자기 위로의 서사 방식이란 상처가 깊은 영화 속 중심인물이 자신의 불행을 다독이며 이런저런 고난을 통해 그리고 누군가의 각별한 도움을 통해 끝끝내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과정의 이야기 패턴을 말한다.

자기 위로는 타인에게 눈길을 돌려 적극적으로 자신과 주변을 변화시켜나가는 주동적 인물의 캐릭터 관점에서 보면 매우 소극적이고 자기중심적 세계관 안에서 절망의 달콤한 게으름을 탐닉하는 자의 특징적인 심리적 태도다. 상업영화는 이런 자기 위로의 심리 패턴을 구매욕구로 전환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해왔다. 어차피 누구든 돈을 낼 수 있는 관객이 자기 돈을 내서 만족스럽게 여기면 그만이기 때문에 다소 부정적인 정서를 다룬다고 해도 그다지 부담을 갖지 않는 것이다. 사탕 만드는 사람이 어린이들의 치아 썩는 일쯤은 조금은 외면할 줄 알아야 하듯이 말이다.

<그래비티>의 여주인공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어쩌면 절대로 마음으로부터 제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언제나 쾌활한 모습으로 능수능란하게 우주의 무중력상태를 즐기는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에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아주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는 것.

영화는 엄마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극심한 허무를 느낄 정도로 처절하게 간직하고 있는 자기 아이에 대한 상처를 보여주는 데에 인색하다. 어떻게 그 아이가 (엄마의 눈에)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됐는지 단 한 컷의 사진으로도 보여주지 않는다. 지나가는 대화 속 그저 짧은 사연의 언급 정도로 그친다. 왜?


<그래비티>는 아이의 죽음에 대한 좀 더 찬찬한 해명보다는 그건 어쨌거나 엄마의 심리적 결핍 자체만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당신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무중력 상태를 헤집고 다니는 롤러코스터 같은 짜릿한 기분전환을 해드리겠소! 중요한 것은 (지불능력이 있는) 당신의 (그 값에 부응하는) 위로를 받아야 하는 마음이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래비티>의 아름다움을 설파하고 다니는 그 나름 영화광의 섬세한 심미안을 내가 작심하고 평가절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관객 자신이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살피지 못하고 자칫 영화 속 동경과 위로에 마음을 주는 일에 영화광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는 바다. 가장 속기 쉬운 순간이란 자기 위로의 따뜻한 환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곤궁한 당신의 호주머니를 대가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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